누항기
누항기-陋巷記
고등학생 때 친구 현욱과 광주역에 갈 일이 있었다. 시각은 밤 8시 경.
“학생들 쉬었다 가~.”
아줌마가 다가와 은근하게 말한다.
“어~~ 우리 집 가까운디요.”
뿌리치고 오다가 아줌마 말의 의미를 뒤늦게 알았다. 친구도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당시 광주역은 대인동에 있었다. 그 근방은 소위 사창가였다.
‘어느 창녀의 죽음’이란 소설이 있다.
6.25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린 한 가족의 비극적 사연이 소설의 중심이다.
싸락눈 내리는 어느 겨울, 새벽 거리를 달리던 신문배달 소년에게 젊은 여인의 시신이 발견된다.
신고 받고 경찰 출동한다. 죽은 여인은 거리의 여인 창녀였다. 자살로 사건은 종결된다.
그러나 휴머니스트 형사는 슬픈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형사의 추리와 끈질긴 추적으로 밝혀진 사연은 이렇다.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끌려간 아버지 찾아 나선 어린 오빠와 더 어린 여동생은
피난의 인파에 밀려 헤어지고 만다.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어린 여동생의 파란만장한 삶의 끝은 거리의 여인 창녀.
눈 오는 겨울밤 손님으로 찾아온 한 남성, 손님을 맞는 창녀, 밤은 깊어간다.
긴 밤 보내는 동안 살아온 이야기 늘어놓는 남자.
“내 동생도 살았으면, 아가씨 나이쯤 될 건디, 착한 내 동생은 좋은 데 시집가서 잘 살 거여......”
여자는 가슴이 떨린다. 괴롭다. 남자는 돈이 부족하다고 시계 내민다.
“인민군에게 끌려가면서 아버지가 맡기신 소중한 시계여. 꼭 찾으러 올게.”
시계와 함께 건넨 명함에 노가다 십장 직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이름 세 글자가 또렷하다.
남자는 오빠였다.
남자 떠난 골목에서 여자는 가슴이 미어진다.
싸락눈 내리는 추운 겨울 새벽, 슬픈 비밀을 안고 여자는 자살을 선택한다.
거리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이 있다.
오페라로 더 유명해진 ‘라트라비아타’, 역시 영화로 더 알려진 ‘영자의 전성시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죄와 벌의 여주인공 ‘소냐’ 등 많다.
작품 속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애절한 사연이 있고, 그 끝은 비극이다.
나는 한 때 거리 여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다분히 낭만적 호기심이다.
20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겨울이었다.
목포에서 생활할 때다. 광주 와서 친구들 만나고 가는 길에 일부러 대인동을 지나갔다.
여인이 옷깃을 잡아 끈다.
여인을 따라 골목길의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다. 방 하나를 베니어판 칸막이로 나눈 방이다.
여자가 들어온다. 짙은 화장이 덕지덕지하다. 바로 쳐다 볼 수가 없다.
농치며 다가오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 나는 그냥 자고만 갈 거여,” 호기를 가장하여 무게 잡고 말한다.
“나는 아가씨 사연 들으러 온 사람이여. 그러니 편하게 이야기나 하게요.”
여자 생뚱맞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신문기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니 내 뜻을 이해했는지 차분히 앉는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요약해서 이야기했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창녀 소냐를 만나면서, 불안과 고뇌로부터 해방되는 이야기,
시베리아로 유형 가는 육체적 형벌은 받지만, 영혼은 자유로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여자야? 이제는 아가씨 이야기 해 봐요.”
여자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 기억에 남은 내용이 없다. 어쩌면 기억을 지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여자가 목의 목걸이를 보이면서 했던 말만 기억된다.
“이것도 그 남자가 해준 거예요.”
신파조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란 존재를 간파한 여자의 연극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실망이다. 갑자기 내가 창피해진다. 여자가 말한다.
“나 잠깐 나갔다 오면 안 돼요?”
나는 편히 나갔다 오라고 말한다. 여자 나간다. 나는 자리에 눕는다. 베니어판 저 쪽의 역겨운 소리들.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날이 새가는 새벽에 여자 들어온다.
화장 지워진 얼굴 지친 모습이다. 자리 비켜주니 눕는다. 바로 잠에 떨어진다. 코를 골며 잔다.
나는 가만히 일어난다. 집을 나와 골목길 들어선다. 새벽의 찬 공기가 상쾌하다.
새벽 차 타고 목포로 돌아왔다.
이후 거리 여자에 대한 나의 낭만적 호기심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