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장모님
큰 딸은 가난해서 걱정이고
둘째 딸은 아퍼서 걱정이고
셋째 딸은 아들 없어 걱정이고
막내딸은 사위 꼬라지 고약해서 걱정이고,,,
장모님의 넋두리이다.
장모님!
꼬라지 고약해 걱정하던 막내 사위 인사 올립니다.
그곳에서는 걱정 없이 잘 계시는지요.
혹시 지금도 걱정하고 계신다면 이제는 걱정 거두시고 편하게 지내십시오.
저는 연희에게 꼼짝 못하고 잡혀 살고 있습니다.
설거지도 내가 합니다. 연희보다 더 잘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나는 건조대에 널고, 마르면 걷어 정리합니다.
청소도 합니다. 아참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발마사지를 해줍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연희를 제일 사랑하고 귀히 여깁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니 시낭고낭 당신의 막내딸 잘 아픕니다.
장모님은 이제 신이 되셨으니 막내딸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장모님!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고 했는데,
잘난 자식보다 못난 자식 아프면 부모는 더 아프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내 두 아들 보니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뭣도 모르면서 경솔하게 처갓집에 가면 이일저일 끼여 들어 내 생각을 말하고 했어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장모님 앞에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처남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장모님을 위로해 드려야 했는데, 그 때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모님을 위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장모님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모님! 장모님 마음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장모님!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광주천변 쪽입니다.
천변에 나가면 다리 긴 왜가리 한 마리, 긴 목 움츠린 채 한 곳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마치 만들어 세워둔 조형물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고고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외롭습니다.
나는 유난히 하얀 깃털의 왜가리를 보면 하늘에 계신 장모님 생각을 합니다.
장모님은 큰 키에 가냘픈 몸매가 학을 닮았습니다. 장모님의 삶도 학처럼 고고했습니다.
학처럼 외로움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슬픔이었습니다.
부잣집 마님이라고 동네사람들 존중하고 부러워했지만, 장모님은 결코 행복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한을 가슴 속으로 속으로 새기면서 살아오신 한 많은 삶이었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 밖으로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부잣집 마님의 기품을 지키신 현모양처의 삶이었습니다.
장인어르신이 당당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장모님의 내조의 힘이 제일 크게 작용했음을
나는 결혼하고 한 참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집안의 살림 검소하고 알뜰하게 꾸리셨습니다. 단 한 톨의 곡식도 허투루 나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끄나풀 하나도 고물고물 챙겨 놓으셨다가 필요할 때 내 놓으신 것 보면서 나는 감탄했습니다.
장모님은 어느 곳에서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합니다.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시지 않았습니다.
장모님은 마지막까지 인종의 미덕 잃지 않은 조선의 여인이었습니다.
오직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장모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모님께 시 한 편 바칩니다.
獻 詩
우슬재 넘어가는 지아비 바라보는 원망의 세월
가슴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바스러져버린 한이여
이제는 지옥 불에도 타지 않는 사리만 남았습니다.
아들 낳아, 아들 없는 친정의 소원 풀었으나
아들 위한 희생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은
상처를 품어 안은 슬프고 아름다운 진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