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는데
주사위는 던져졌는데
하고자 하는 일을 마무리하면, 흐뭇하거나 보람차거나 시원하다.
때로는 허탈하기도 하다. 이런 심리는 일이 힘들었을 때 더 강하다.
24일 퇴고를 마치고 인쇄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흐뭇하거나 보람차거나 시원하지 않다.
큰일 치루고 난 허탈함도 없다. 얼굴이 뜨겁고, 불안하다.
인쇄에 들어간 원고와 내 컴퓨터에 저장된 원고를 비교하니
아~ 수정한대로 안 된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어쩌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는데......
글의 오류, 막상 글쓴이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 생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 잘 안 보이는 것이다.
‘상감청자’를 쓴다면서 ‘삼강청자’로 쓰고, ‘대물’을 ‘거물’로 쓴다.
이렇게 잘못 쓴 글은 몇 번을 읽어도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다.
뇌가 ‘삼강’을 ‘상감’으로, ‘거물’을 ‘대물’로 인식해 버리기 때문이란다.
‘비질’과 ‘빗질’ 은 뜻이 서로 다른 낱말이다. ‘뱃장’과 ‘배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질을 빗질로 쓰고 배짱을 뱃장으로 써 비문이 되기도 한다.
아들의 도움이 있어 다행이다.
장기나 바둑도 옆에서 보는 사람 눈에 허점과 묘수가 더 잘 보이는 것처럼
글의 오류도 글쓴이보다 제삼자의 눈에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출판사는 수정과 디자인 편집을 나누어 작업한다.
한 권의 책은 글 쓴 저자와 책을 펴내는 출판사의 합작품이다.
글이 독자의 공감을 많이 얻으면 저자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오탈자가 거의 없거나 디자인이 좋으면 출판사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27일 책이 나왔다. 대충 훑어본다.
263쪽 둘째 줄 문장이 헝클어졌다. 원래 문장은 아래와 같다.
또래들 서당에서 붓으로 한문을 익히는 동안, 소년은 산에서
유일하게 아는 한자 ‘一’을 땅 위에 작대기로 쓴 후 엄숙하게 읊었다
“한 일자로다”
이런 오류 또 있을까. 읽다보면 발견될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불만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는데.
2019년 9월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