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reum 둔주 2020. 2. 14. 10:35


‘아직’은

어떤 여지의 속성을 갖고 있다.

즉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벌써’는 그것을 쓰는 순간

철저한 현재, 나아가 과거를 거느린다.

 

누군가 새해라고 했다.

누군가는 2020년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설도 지났다고 했다.

그러자 가장 말없이 있던 누군가가 벌써 2월이라고 했다.

2월이라는 단어의 출격에 새해와,

2020년과, 설이, 부유하는 먼지처럼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아니다. 2월이라는 현재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더욱 부각하고 명징하게 하는 앞선 단어 ‘벌써’ 때문이었다.

그냥 2월이라고 했으면 누군가는 며칠이라고 했을 거고

누군가는 요일과 시간까지 또 나열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와 ‘서서히’ 대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2월보다 훨씬 강한 악센트가 주어지던 ‘벌써’의 출현으로

2월은 ‘갑자기’ 들이닥쳤다.

벌써 2월!

두 음절의 짧은 부사 ‘벌써’가 붙자 2월은 원치 않는 현재가 되었다.

느닷없는 맞닥뜨림이 되었다.

누군가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고

누군가에게선 짙은 한숨이 얼굴 가득 퍼졌으며

누군가는 진저리치듯이 양 어깨를 떨다가 고개까지 흔들었다.

자신이 기대하고 예상했던 속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 속도에 편입될 수도 피할 수도 있었던 경험치를 뛰어넘어

훅! 들어온 민낯의 시간은 그래서 불편했다.

 

내 나이 벌써 칠십이야

내 아니 아직 칠십이야


나 벌써 늙었어

나 아직 젊어

 

벌써 끝났어

아직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