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교단일기 2

gureum 둔주 2020. 6. 21. 06:47

교단일기

1993년 k교사는 k교에서 근무했다. k교는 교생실습학교다. 교생실습이 있는 5월이면 아이들은 천국이고 담임교사들은 고역이다. 교생지도를 맡는 교사는 교실 뒤에 앉아 참관하는 교생들 앞에서 수업을 해야 하니, 매시간이 시범수업이다. 그리고 교생의 수업안 작성 등 수업실습을 지도하고, 교생들을 상대 평가하여 학점을 매겨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지도교사를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교감 승진에 꼭 필요한 점수가 있기 때문에 교감을 목표한 교사들은 서로 하려고 경쟁한다. 교감 승진에 목맨 교사들이 k교에 근무하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생은 학년 당 3개 반 총 18개 반에 배정되고, 한 반에 5명씩 들어왔다. k교사가 담임으로 있는 2학년은 2반 김강흠, 3반 김인자, 6반 서종권 교사가 교생지도를 맡았다.

교생실습 첫날 교생들은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배정받은 교실로 가 아이들과 첫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이틀 후 교생지도교사 중 한 명이 전체 교생들 앞에서 시범수업을 한다. 시범수업은 서로 안 하려고 한다.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시범수업을 희망하는 교사가 없을 경우 교육경력이 가장 짧은 교사가 시범수업을 한다고 규정으로 못 박았다. 반대로 교생지도교사는 하려는 교사가 많아 경력이 많은 교사 순으로 배정했다. 서로 하려고 할 때는 경력이 많은 순으로 하고, 서로 안 하려고 할 때는 경력이 짧은 순으로 한다는 관례는 잘못된 공조직 문화이다. 서로 하려고 하는 일이 위험하지 않으면 경력 짧은 후배에게 양보하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경력 많은 선배가 그 짐을 지는 것이 바람직한 조직문화이다. -80년 5월 27일 도청을 사수한 광주시민군은 어린 학생들을 억지로 밖으로 내보내면서 꼭 살아서 역사의 증언자가 되라고 명령했다. 남은 그들은 장렬하게 산화했다.-

결국 교육경력이 가장 짧은 2학년 3반 담임 김인자가 시범수업 교사로 지정되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시달린 김인자 교사는 k교사에게 자문했다. 김인자 교사는 국어과 말하기 듣기로 수업을 하겠다면서 k교사에게 수업안을 좀 써주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k교사는 다소 황당했지만, 시범수업의 중압감을 이해하기 때문에 수업안을 써주기로 했다. K교사는 수업안을 완성해 김인자 교사에게 넘겼다. 결재받은 수업안은 인쇄를 마쳤다.

시범수업 하루 전, 교사 김인자가 일주일 병가를 냈다. 수업할 교사가 하루 전에 일주일 병가를 내버렸으니...... 수업을 못하겠다는 무언의 선언 같았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연기할 수도 없고, 취소할 수는 더더욱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해 버렸다.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사들은 교실에 모여 대책 없는 대책을 논의했다. 꽉 막힌 상황에서 k교사가 말했다. “제가 대신 수업을 해볼게요.” 동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수업안도 내가 썼어요. 또 3반 아이들의 이름도 거의 알고 있고요.” k교사의 말에 “그래, 자네라면 잘할 것이네” 동료 교사가 고마워하며 덕담을 하였다. 이렇게 비상사태는 해결되었다.

다음날, 셋째 시간 2학년 3반 교실.
교실 뒤에는 교장, 교감이 앉아있고, 과학부장은 수업장면을 녹화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교실 앞과 뒤 그리고 복도에는 90여 명의 교생들로 빽빽했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범수업은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지휘아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듯 아이들의 교육활동은 교사의 지도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참관인들은 자신의 교육방법과 비교하면서 수업을 평가한다. 저학년 교육이 힘든 이유이다. 대학생이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방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김용옥 교수는 표현이 거칠어도 자신만의 해박한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교육은 어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가르치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참관하는 교사들은 수업자의 교수 방법을 평가하고 비판한다.

k교사는 교생들 앞에서 2학년 3반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이 쓴 수업안으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공연(?)을 했다. 아이들은 활발하게 발표하고 즐겁게 활동했다.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흥이 나 더 적극적인 것 같았다. 드디어 40분 수업을 마쳤다. k교사의 눈에 비로소 교장과 교생들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k교사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재주는 재주네, 능수능란하데”
교생 김미단이 k교사를 얼싸안을듯하면서 한 말은
“선생님 수업 최고였어요. 친구들이 선생님 멋지다고 난리예요”
교생 김미단은 k교사의 초등학교 제자였다.

교사 K는 과학부장이 녹화해 준 비디오테이프를 한동안 귀하게 보관했다.
그러나 정년 후 교직생활의 흔적을 지우면서 테이프도 사라지고 말았다.


에필로그 -백금목걸이

그 당시 학교엔 급식실이 없었다. 점심시간이면 교사들은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날도 교사 K는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이었다. 운동장의 모래흙을 발로 툭툭 차면서 교실로 가는데 발길에 뭔가 걸렸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웬 목걸이가 모래흙에 묻혀있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의 액세서리 같았다. 손으로 들어보니 투박한 은색의 금속성으로 중량감이 있었다. K교사는 무심히 목걸이를 들고 교실로 들어와 무심히 책상 서랍에 넣었다.

한 달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점심을 먹은 후 2학년 교사들끼리 2층의 학년부장 교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한담의 시간을 가졌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중 김인자 교사가 말했다.
“그 목걸이는 우리 남편이 결혼 기념으로 해준 것인디, 잃어버렸다니까”
K교사는 갑자기 운동장에서 주었던 그 목걸이가 생각나
“김 선생 그 목걸이 무슨 색깔이요?” 하고 물었다.
“백금이어요”
K교사는 1층 교실로 내려가 책상 서랍에 있는 목걸이를 가지고 왔다.
목걸이를 받아 든 김인자 교사 깜짝 놀라며
“오매! 내 목걸이예요”

둔주
    동요 '바람이었으면' 감상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