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지리산
골짜기 맑은 물에 발 담그고
골바람에 실려 온 숲 내음 맡으며
도시의 묵은 때 씻으려 뱀사골로 향했으나
길 잘못 들어
마한 시대 정 장군의 요새 정령치에 올랐다.
해발 1172m 정령치에서 바라본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연하봉, 영신봉은
솜사탕 같은 운무雲霧에 감싸여 신비하고
검푸른 능선의 파도는 바다처럼 아득한데
구름안개 산허리 두른 반야봉은 선명하다.
나는 얄팍한 감상에 젖어 언어를 잃고
구름안개 그윽한 반야봉 멍하니 바라보다
불현듯 역사를 성찰하라고 꾸짖는
반야 신령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잠시 들떴던 낭만적 흥분을 반성하며
지리산의 아픈 상처 떠올린다.
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면서
그들은 남에서는 토벌해야 할 반란군이었고
북으로부터는 고립되어 버려진 자들이었다.
토벌하는 자에게는 반역의 땅 지리산, 그러나
그들에게는 해방의 땅, 녹 슬은 해방구였으니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대부분 지리산에서 죽어 사라져갔다.
아직 소년티 벗지 못한 어린 그들이 죽어갈 때
마지막 한 마디는 “어머니”
눈물이 난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 가난한 마을
열여섯 꽃다운 나이의 그녀는
이웃 마을 키다리 총각을 만나 결혼했으나
알콩달콩 깨소금 쏟아질 시간도 없이
남편은 산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신부 그녀는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남편을 따라 지리산 빨치산이 되었다.
남편은 죽고, 함께 있던 그들도 죽고 죽어....
그녀는 지리산에 살아남은 마지막 빨치산이었다.
아! 지리산의 슬픈 상처를 잊은 채
역사의 성찰 없는 어쭙잖은 감상만으로
지리산을 노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감상하세요.
2020. 7. 18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