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번역이란
gureum 둔주
2020. 9. 12. 10:18
톰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았다.
개화기 때의 일본에 용병으로 간 미군 장교가 일본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기록한 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1880년대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격변의 상황이 시대적 배경이다. 일본은 앞서가는 서구문물과 정치 제도의 도입으로 근대화를 이루지만, 일본의 자존심인 사무라이 정신을 버리지 않고 융합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일본 정신을 지키려는 사무라이부대와 근대화된 무기로 무장한 군대와의 전투 장면이 압권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휘날리는 벚꽃 잎은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듯 처연하다. 톰크루즈의 멋진 연기가 한몫한다.
일본인들이 영화 속의 주요 인물이기 때문에 대사도 일본어가 많다.
“we must go” 일본어 대사를 영어로 번역한 자막이다.
“지체할 수 없습니다.”영어로 번역한 자막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자막이다.
번역은 문학의 한 장르이다. 영화 자막은 이를 확인해 주는 작은 사례이다.
헴릿의 그 유명한 독백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번역되어 심금을 울린다.
만약 영어 원문을 기계적으로 번역했다면 우선 이해도 선뜻 안 되고 느낌도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외국인이 쓴 작품을 우리글로 번역된 책으로 읽는다. 이런 이유로 가끔 책을 읽으면서 원문의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고 이해의 어려움도 겪게 된다. 또한 원문의 번역이 번역자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게 번역되어 혼란을 주기도 한다.
모파상의 대표작 여자의 일생에서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손녀를 안고 볼에 키스하는 비극의 주인공 잔느에게 하녀 로잘 리가 한 그 유명한 대사도 소설과 영화에서는 다르게 번역되었다. 소설의 번역은
“아씨, 인생은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군요.”이다.
그러나 영화의 자막에서는
“아씨, 인생은 기쁜 것도, 기쁘지 않은 것도 아니네요.”로 번역되었다.
대학자 정약용의 한문으로 써진 글들도 한글로 옮기는 번역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한글밖에 모르는 나 같은 문맹에게 외국어 번역이 정말 중요한 이유이다.
얼마 전 존경하는 화해 일승 님이 백거이의 시 9수를 본인이 번역 해설하여 책으로 엮은 ‘백거이 시 9수 감상’을 보내왔다. 그중 한 수를 옮긴다.
對酒 대주
어이, 술이나 한 잔 하세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뿔만 한 세상에서 뭘 그리 다투시나?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에서 튀는 불꽃보다 짧은 인생인데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있니 없니 따지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시구려
不開口笑是痴人 불개구소시치인
입 벌려 호탕하게 웃을 줄 모르는 그대, 바보!
아래는 인터넷에 오른 여러 번역 중 한 수이다.
對酒
술을 마시며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들 무엇하랴?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번쩍이듯 찰나를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대로 즐길 일
不開口笑是痴人
크게 웃지도 못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로다.
2020. 9. 12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