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以心傳心(이심전심)
gureum 둔주
2020. 10. 3. 16:34
추석 하루 전 부산 조카 경철이 전화가 왔다. 안부 인사 다음 큰형님 가족이 추석 다음 날 고향 부모님 산소 성묘 온다고 하기에 조카에게 말했다. “나도 니 작은 엄마랑 시간에 맞춰 해남으로 갈란다.” 통화를 듣고 있던 아내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눈을 흘긴다.
통화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하는데 왜 그러냐고 따지니 하내가 하는 말 "우리가 간다고 말하믄 성님이 우리 줄라고 이것저것 준비할 거 아니요, 그랑게 간단 말 안 하고 가만히 갈라고 했지라우."
한편 부산에서는
경철: 엄마, 광주 작은아버지랑 통화했는디, 작은아버지도 모레 해남으로 오신다고 하네.
엄마: 왜 쓸데없는 소리 했냐. 느그 작은아버지는 벌써 산소에 다녀가셨는디, 니가 전화로 그런 말 하믄 느그 작은아버지 또 산소에 오실 거 아니냐. 그라믄 느그 작은어머니는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고….
큰형수는 작은아들 경철을 나무랐다.
10월 2일 금요일 (음력 8월 16일)
평소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는 아내, 새벽부터 일어나 전복을 씻어 전복죽을 쓰고, 송편을 찌고, 반찬을 만들고, 선물 상자를 싸니라 정신이 없다.
아침 8시 30분경에 부산 큰형님의 전화가 왔다. 명절이라 고속도로가 막힐까 봐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로가 한산해 예상보다 빨리 순천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동을 자제하고 성묘도 온라인으로 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국민이 협조한 결과다.
우리도 서둘러 아침 9시에 아내가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승용차 트렁크 가득 싣고 해남으로 향했다. 역시 도로가 한산했다. 해마다 추석이면 꽉 막힌 도로에서 시달렸는데, 이 또한 코로나19의 역설적 긍정이다.
창밖의 풍광 느긋이 감상하면서 영암 지날 즈음 벌초하는 연덕에게 전화했다. 아직 아침 먹지 않았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 준비한 음식 같이 나눠 먹기 위해서다. 그러나 연덕은 방금 아침을 먹었다고 했다.
10시 30분 산소 가기 전 길가에 있는 연덕 집에 들렀다. 아내가 준비한 한과와 봉투를 내밀었다. 연덕은 한과는 받겠다면서도 봉투는 절대 안 받으려 했다. 내가 억지로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산소에 가니, 큰형님과 큰형수님은 벌써 와 산소 주변을 정리하고 계셨다. 경선, 경철 조카는 옛 집터 밭에 다녀왔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고구마 순 뜯다 보니 정오가 되었다. 서로 준비해온 점심을 차렸다. 아내가 준비한 음식과 형수님이 준비해온 음식으로 푸짐했다.
“시숙님, 전복죽 간이 맞을랑가 모르겠네요.”
아내의 말에 " 제수씨 음식은 간 안 봐도 맛있지라우.” 큰형님 말씀이다.
조카 경철이 죽을 먹다가 “작은 엄마, 죽에 전복 내장을 넣었어요?” 라고 물으니 "그래, 죽에 내장을 넣어야 색깔도 좋고 맛있단다.” 아내가 대답한다.
“아, 그래서 색이 이렇구나, 작은엄마는 전복죽 식당 해도 되겠어요.” 조카와 아내의 대화가 정겹다.
“시숙님, 이 송편 하나 들어보세요.”
아내의 말에 큰형님이 송편을 드시면서 맛있다고 하신다. 조카 경철이 송편을 먹다가 떡집에서 산 것이냐고 묻는다. 듣고 있던 큰형수님이 말씀하신다.
“다 느그 작은 엄마가 했지야. 고운이 장가 갈 때, 이바지 음식도 느그 작은 엄마가 손수 다 만들었단다”
형수님의 말 끝에 경철이가 작은 엄마 식당 하시라고 너스레를 떤다.
아침을 대충하거나 걸렀기에 다들 배부르게 점심을 먹었다. 큰형수님이 싸 오신 밥은 그대로다. 장흥 들렸다 가면서 드시기로 했다. 큰형님 가족은 장흥을 들르고, 나는 처가 산소에 가기 때문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큰형수가 아내에게 줄 선물들을 승용차에 싣는다. 트렁크가 넘친다. 아내도 큰형수 차에 과일 등 선물을 싣는다.
큰형님 가족과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출발했다.
집에 돌아와 형수님이 주신 선물 펼치니 하나 같이 지극정성 사랑 담긴 선물이다. 겨울에 입은 방.한 조끼부터 참기름, 생선, 과일, 커피 등 종류만도 십여 가지다.
얽히고설킨 세상살이, 내 속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고, 너무 한다며 원망하며, 오해를 푼다고 장광설 늘어 설명하는데도 불신과 원망으로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인간관계도 있다. 이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방적 사랑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 큰형수님과 아내는 속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큰형수와 아내는 말주변이 없다. 그래도 서로의 속마음을 전달하는 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언의 이심전심이기 때문이다. 아, 무언의 감동이다.
2020. 10. 3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