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교단 일기 1

gureum 둔주 2020. 10. 17. 06:23

 

어느 소녀의 성장기

현은 1983년 H초등학교 6학년 때의 제자이다. 현은 다른 아이들보다 좀 슬거운 아이였다. 현은 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는 아이라기보다는 공부 가르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아이 같았다. 현은 말썽을 피워 꾸중 듣는 일도 없고, 공부를 잘해 칭찬 듣는 일도 별로 없는 아이였지만, 아이들과 어울릴 때는 마치 언니처럼 굴었다.

학년말,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 축구를 잘한 현종이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다. 병원을 찾아갔다. 머리에 붕대를 하고 누워 잠든 현종 손을 잡고 엄마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현종 엄마에게 말했다. “이번 사고는 엄마의 사랑으로 현종의 닫힌 마음 여라는 신의 섭리일 지도 모릅니다.” 현종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훔쳤다. 현종이 아빠는 택시 기사이고 엄마는 새엄마였다. 현종이는 새엄마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현종이 퇴원할 때까지 모둠별로 현종을 찾아가 놀아주고 했다. 병상에는 예쁜 유리병에 색색의 종이학 천 마리가 들어있었다. 종이학들은 창공을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색종이로 접은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낸 아이가 바로 현이었다.

졸업식을 앞두기까지 나의 일기장 지도 교육은 계속되었다. 현은 일기에 졸업식 때 답사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적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자기를 시키지 않을 거라는 절망도 적었다. 그리고 아마 선생님은 3반 여자아이 강oo를 시킬 거 같다는 예상을 적었다. 졸업식 때 답사는 강oo이 했다. 현은 내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현은 졸업으로 학교를 떠나 중학교로 가고, 나는 인사 발령으로 학교를 떠나 효동으로 갔다.

세월이 흐르고…, 언제부턴가 현이 편지로 소식을 전해왔다. 예쁜 봉투에 곱게 접어진 꽃 그림 편지지에는 성숙해 가는 소녀의 순수와 고운 꿈 그리고 지극한 정성이 담겨 있었다. 또박또박 눌러쓴 볼펜 글씨로 깨알 같이 새겨놓은 사연은 초등학교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나름의 정성으로 답장했지만 현의 정성을 따를 수는 없었다. 나는 현의 편지를 읽고서야 6학년 때 담임만 몰랐던 아이들의 음모(?)와 끼리끼리 그들만의 세계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6학년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에 둘러싸인 섬 같은 존재였다. 나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는 힘이 된 일도 있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일도 있다는 것을 현의 편지를 읽고 알았다. 현의 편지는 소녀의 아름다운 분홍빛 꿈으로 채워졌다. 때로는 암담한 진로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청소년의 고뇌로 채워졌다. 나는 한 번도 현이 꿈을 펼칠 날개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현의 고민을 해결할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현은 스스로 성숙하고 스스로 성장해 갔다.
대학생이 된 현을 만난 그날은 길거리에 노란 은행잎 떨어져 나뒹구는 깊은 가을이었다. 잔뜩 움츠러든 거리의 사람들 따스함을 찾아 종종걸음을 걷는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나와 현은 집 앞 소줏집에 앉았다. 주고받은 소주잔이 많아질수록 얼굴은 붉어지고 말은 많아졌다. 나는 취했고, 현도 취했다. 술집에서 나와 나는 가까운 집으로 걸어왔고, 집이 증심사 쪽으로 먼 현은 택시로 갔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참 무심하게도 흘렀다. 나는 인생의 황혼 칠십이 되었고, 현은 전남대 조교에서 순천 모 대학교 교수님으로 옮긴 지 십 년이 되었다.
학운에서의 제자들 소식을 많이 듣고, 많이 알고, 많이 만난다. 현이 징검다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스승의 보람은 제자가 스승을 앞설 때라고 한다. 현은 나에게 부끄러운 보람이다. 특별히 예뻐한 것도 없고, 잘 가르친 것도 없는 나를 잊지 않고 지금껏 소식을 주고, 찾으니 부끄럽다. 스스로의 힘으로 적성을 찾아 성공해서 고맙다. 현아, 고맙다.
2020. 10. 17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