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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gureum 둔주
2020. 10. 27. 09:45
친구!
뭐가 그리 다급해서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 영섭, 영빈에게
이별을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그리 황망히 떠나버렸는가.
지난 삶 회고할 여유
행복해야 할 여생 아직 한참 남았는데…
왜 그리 빨리 삶의 끈 놓아버렸는가.
혹시
생 너머의 그 영원한 침묵의 세계에서
중요한 임무라도 부여받은 것인가?
그래서 그리 홀연히 떠난 것인가?
거기는 정말 침묵의 시간 안식의 세상인가?
친구!
1984년 나이 서른다섯에 H교에서 첫 만남 이후
1993년 K교에서 마지막 동 학년을 할 때까지
동고동락했던 그 특별한 인연의 세월 10년
그리고 지금까지 나누어 온
깊은 정의 세월을 생각하면
그리 빨리 떠나버린 친구를
나는 그리 빨리 놓아 보낼 수 없을 것만 같네.
돌아보면 40여 년간 친구와 쌓아온 추억들
글로 풀어놓으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할 것이네
1993년 3월 새 학기 첫날 교무실에서 친구 그대는
로마 귀족들의 탐욕을 비유로 선배들을 질타하여
동료 교사들의 공감을 얻었지.
그리하여 상처받은 나의 명예는 회복됐었지.
그날 친구의 연설은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 일당의 음모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안토니우스의 연설보다 더 훌륭했었네.
친구, 자네는
내 피묻은 상처, 아픈 명예를 묵묵히 변론해 주었네
내 보잘것없는 능력을 항상 부풀려 인정해 주었네
내 하찮은 성취에도 격려와 축하 아끼지 않았네
친구, 자네는 진정 나의 친구였네
친구, 자네는
오로지 부인만을 사랑하는 애처가였네
두 아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친구 같은 아빠였네
삶의 중심을 온전히 가정에 두고 있는
훌륭한 가장이었네
내 의견을 거의 무조건 동의해주는 군자였네
친구, 나는 진정 그대의 친구였네.
친구!
삶과 죽음의 갈림길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는데
생과 사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얼마나 힘들었는가?
친구의 마지막 그 길 아무 도움 주지 못해 미안하네
그러나 친구를 보내면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네
백 년 인생이라 하지만
늙고 병들어 생과 사의 경계마저 모호한 상태로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리는 요양원에서
가족들에게 짐이나 되는 의미 잃어버린 삶보다
차라리 좀 빨리 가더라도
맑은 정신으로 살면서 요양원 가지 않고
자식들에게 짐 안 되는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 말일세
이런 논리로 본다면 자네는 복된 죽음 맞은 것이네
다만, 너무 빨리 삶을 마감한 것이 한이 될 뿐일세
친구야!
나 또한 머잖아 이승의 삶 마감할 것이네
소망이 있다면 친구처럼 저승길 밟는 것이네.
친구!
얼마 남지 않았네.
곧 뒤 따라 감세.
거기서 보세
안녕
2020. 10. 27 둔주
*10월 23일 영면한 친구 광흠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