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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로렌스

gureum 둔주 2021. 6. 15. 22:14

아랍 부족의 족장복을 입고 기뻐하는 로렌스

아라비아 로렌스

 

 '아라비아 로렌스' 내 나이 스물이 못 되었을 때 70mm 대형 화면으로 봤던 것은 학실한데,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사막, 낙타, 등 단편적인 영상 조각들뿐이다. 지루하게 보면서 졸았던 기억만 부끄럽다. 아랍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도 못하고 졸면서 지루하게 보았던 기억 때문에 다시는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영화를 소개한 영상을 보고 다시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바로 인터넷으로 이 영화를 내려받아서 거실의 TV 화면으로 감상하였다. 이번에는 지루하게 졸 틈도 없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대형 TV 화면에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은 한편의 서정시였다. 사막을 무리지어 이동하는 낙타부대의 전투 장면은 장엄한 서사시였다. 사운드 바의 음향은 극장 못지않게 웅장했다. 나는 비로소 아라비아 로렌스를 제대로 감상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군은 오스만 제국, 지금의 터키를 공략하기 위해 아랍 부족들의 협력이 필요했다. 영국군 정보 장교 로렌스는 이를 해결할 임무를 부여받고 아랍으로 파견된다.

박학다식한 괴짜 천재 로렌스는 분열한 아랍 부족들의 연합을 이끌어내고, 난공불락 요새 터키의 아카바를 점렴하기 위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는 사막을 횡단한다. 터키군도 적이 사막을 건너 올거라고는 예상하지 않고 주력 포대를  바다 쪽으로 고정 배치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바로 이 점을 역 이용한 것이다. 제갈공명의 허허실실 전략이다. 

로렌스는 죽음의 사막을 횡단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고, 아랍 부족들의 신뢰를 얻어간다. 낙오된 부하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릎쓰고 모래 폭풍 몰아치는 사막으로 들어가는 희생, 부족들의 분열을 막기 위해 법을 어긴 부하를 자신의 총으로 처단해야 하는 고뇌, 그리고 족장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사막을 건너 아카바를 기습하는 무모함(?)이 시나브로 아랍인들의 가슴을 움직인 것이다. 

결국 아랍 부족은 아카바를 점령하고 로렌스는 아랍민족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아랍의 족장은 존경의 뜻으로 로렌스의 군복을 불살라버리고 아랍 부족 족장의 의복을 건넨다. 영국 군복보다 아랍 족장 의복을 더 선호하는 로렌스는 마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모세, 물 위를 걷는 예수 같았다. 아랍 민족에게 로렌스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정치인들은 다마스커스를 점령한 뒤, 로렌스의 바람대로 아랍을 독립시키지 않고 분할 통치하려고 한다. 이에 실망한 로렌스는 아랍을 떠난다. 로렌스가 탄 지프차를 오토바이 한 대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앞질러 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국으로 돌아온 로렌스는 운명처럼 오토바이 사고로 다이나믹한 삶을 마감한다.

로렌스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지프차를 타고 아랍을 떠나는 로렌스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앞질러 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화들은 그 영화의 배경과 주제는 각각 달라도, 가슴 조이며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공통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사랑이다. 트로이, 타이타닉, 아바타 등의 세계적 명화도 줄거리에 사랑이 없었다면 그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마치 김빠진 맥주, 팥소 없는 찐빵 같았다고 할까? 그런데, 상영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고, 세계적 명감독들이 한결같이 20세기 최고의 명화라고 손꼽는 '아라비아 로렌스'는 남녀간의 사랑은커녕 스펙터클한 화면 속에 여인이라곤 보이질 않는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는 남녀의 사랑도 없고 아름다운 여배우도 없다. 그러나 부드러운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여인의 풍만한 볼륨보다 아름답고, 불타는 태양은 사랑보다 뜨겁다. 

2021. 6. 16  둔주 

아래 영상을 보시면 영화의 줄거리가 이해될 겁니다. 감상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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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로렌스 줄거리 및 해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