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위대했다
형제는 위대했다 - 영화 자산어보 -
정조 대왕이 죽고 순조가 즉위하자
정권을 잡은 노론 벽파는 '황사영 백서'를 빌미로
약전, 약종, 약용 형제를 죽이려고 한다.
이들은
황사영의 장인 약종은 사형시키지만
약전과 약용 형제는 죽이지 못하고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유배 길을 동행한 약전과 약용 형제는
강진과 흑산도의 갈림길 나주 율정에서 헤어진다.
형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동생 약용에게
형 약전은 흑산도는 설렘과 호기심의 땅이라며
오히려 동생을 위로한다. 이렇게 두 형제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별한다.
그러나 형제는 살아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
절해고도 흑산도에 첫발을 디딘 정약전
그는 분노했으나 결코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았다.
바다 물길에 도통한 어부 창대의 도움으로
'자산어보'라는 위대한 어류도감을 저술하고
배움에 목말라하던 어부 창대에게
학문의 갈증을 풀어주는 스승이 된다.
또 한편
동생 약용과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동생 약용의 제자가 흑산도를 오가며
건네는 서신을 통해 학문적 교류를 이어간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약용의 대표적 저술은
약전의 자문을 받아 비로소 완성된다.
참으로 눈물겨운 감동이다.
동생 약용은 그의 수많은 저서와 함께
유배지에서의 흔적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역사의 진정한 승자로서 존경을 받지만
형 약전은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이도에서
한 많은 삶을 쓸쓸히 마감한 까닭에
동생 약용에 비하여 그 기록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서 '자산어보'의 학술 가치는
약용의 저서와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약전은 동생 약용이 유배에서 풀렸다는 소식에
자신도 머잖아 해배될 것을 기대하며
육지 가까운 우이도로 거처를 옮겼으나
끝내 육지를 밟지 못하고, 붓을 든 채
사그라지는 짚불처럼 스르르 삶을 마감하고 만다.
감독은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했다.
화면 가득한 어두운 흑백 영상은
절해고도 흑산도 주민의 가난과
정약전의 신산한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약전이 세상을 떠나는 날
검은 바다 끝 수평선 위의 하늘은
파란빛으로 신비로웠다. 마치
약전의 영혼이 비로소 안식의 세계로 돌아가
평안을 누릴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소설이 세상에 나오면
그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영화도 그렇다.
약전이라는 실존 인물과 창대라는 가상 인물의
티격태격 만남의 과정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이다.
감독은 이 스토리 속에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삼 형제의 우애와 고초에 관심의 눈을 크게 떴다.
형틀에 메여 사형의 겁박을 받으며 고초를 당할 때
자신의 희생은 의연히 감당하면서도
형제만은 살려내려고 애쓰는 삼 형제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약전, 약종, 약용 형제는 진정 위대했다.
2021. 6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