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reum 둔주 2021. 8. 28. 10:37
성급함

성급함과 태만함
성급함이 시간을 앞당기려는 욕망이라면
태만함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다.
기독교 전통은 태만이 일곱 가지 죄의 뿌리 중 하나라고 말한다. 태만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한없이 미뤄두는 태도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어쩌면 원죄가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급함이다. 성급함이야말로 모든 죄의 뿌리라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는 성급하게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정죄하고 혐오한다. 성급한 사람은 기다릴 줄 모른다. 마음에 한번 후림불이 당겨지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버르적거린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지속이 아니라 파편으로 경험한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면서 조바심, 부산스러움, 불안이 우리의 기본 정서가 되고 말았다. 배설하듯 쏟아내는 성급한 말들이 선량한 사람들의 감성을 해치고, 성급한 판단과 행동은 다른 이들이 다가설 여백을 제거한다.

시인들은 흘러가는 인생의 한때를 언어의 올가미로 잡아채 영원성을 불어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지만 그것을 온축하여 지적체계를 만들거나 품성으로 가꾸지 못한다. 무르익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삶이 속도전이 되면서 이드거니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다. 정보는 명멸할 뿐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 시대는 그런 의미에서 궁핍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현대는 이야기가 정보에 밀려난 시대다. 정보들은 서사적 길이나 폭을 알지 못한다. 정보들은 중심도 없고 방향성도 없이 물밀 듯이 닥쳐온다. 정보에는 향기가 없다. 정보에서 정보로 건너뛰는 동안 인간의 지각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삶은 진동한동 분주할 뿐 향기를 품지 못한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본 히브리의 한 지혜자는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성급함이라는 원죄에서만 벗어나도 삶의 무게와 비애는 줄어든다. 피란처를 찾아 우리에게 다가온 이들을 따뜻하게 그느르는 것이야말로 어엿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을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