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자연인이다

gureum 둔주 2022. 4. 3. 11:07

나는 자연인이다

1.
자식들 떠나버린 고향 산골에
늙으신 부모님은 메마른 등 기대며
생명을 보듬은 대지의 흙처럼 살아가셨다.

어느 날, 어머니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들은 산골에 홀로 남으신 아버지를
서울 집으로 모셔와 살려고 했지만

늙으신 아버지 단호하게
화전 밭 일구며 평생 살아온
고향 산골 떠날 수 없다 하시니

아들은 결국
가족이 있는 서울을 떠나
아버님 계시는 고향 산골로 내려왔다.

2.
고향 산골의 외딴집에서
아버지 모시고 살아온 세월 흐르고 흘러
오십 중년이었던 아들은 어느새
칠십 바라보는 육십 중노인이 되었고

더 늙을 것도 없는 아버지는
마른 짚단보다 가벼워지신 육체에
벌거벗은 아이처럼 마음 어려지시더니
말문마저 닫으시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햇살 따사로운 어느 봄날의 오후
양지 녘에 앉아 먼산바라기 하시던 아버지
풀잎의 이슬처럼 생명줄 놓으시고
생명을 키우는 흙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모신 지
12년째 되던 해였다.

3.
고향 산골에 홀로 남은 아들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 회한이 깊어
아버지 삶의 체취 여전한 산골을 떠나
가족이 있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들은
외딴집 바로 뒤 양지바른 곳에 모신
부모님 산소를 찾아
봉분에 쌓인 낙엽을 치우며
생전의 아버지를 그렸다.

아버지가
집 앞마당의 풀을 뽑으시다
옷에 흙을 묻힌 채 방으로 들어오시면
아들은 지저분하다고 화를 냈었다.

아, 아버지는
마누라 먼저 떠나보내고
정다운 친구들도 하나둘
저 세상으로 시나브로 떠나버린 뒤
말벗 하나 없는 외로움 견디려고
소일거리로 마당의 풀을 뽑았던 것인데
아들은
말을 잃은 아버지의 그 지독한 외로움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4.
그는
죽음보다 무서운 아버지의 외로움을
뜨거운 감성의 눈으로 응시하며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켰다.

그는
아버지를 서울 아들 곁으로 떠나지 못하게 붙든
고향 산골의 흙, 물, 꽃, 나무, 그리고
바람과 별과 해와 달을 시로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칠십 고희를 맞아
서울에 있는 아내의 권유로
써 모은 시를 한 권의 시집으로 출간하였다.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12년
아버지 떠나신 후 12년을
고향 산골에서 살아왔으니
지금까지 24년을
고향 산골에 묻히어 살아온 것이다.

그는
빠름과 편리한 문명의 총화
서울의 틀에 짜인 듯한 기계적 생활은
영육을 옥죄는 듯 숨이 막혀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외롭고 적막한 산골에서
느리고 불편한 생활을 즐기며
자연을 벗 삼아, 자연에 동화된
고독한 자유인
진정한 자연인이다.



에필로그

그가
한창 무르익은 연륜인 쉰셋 나이에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오직 아버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남겨둔 채
홀로 고향 산골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자식도 자기 앞가림은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결혼식 올리던 날
아버지는 13살 어린 나이였고
어머니는 4살 많은 17살이었다고 한다.

2022. 4.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고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