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고 싶었다


탈출하고 싶었다
보석가루 뿌려놓은 듯 별빛은 반짝이고, 귀뚜라미 울음 쓸쓸한 가을밤, 나는 선치분교 관사 자취방에 홀로 앉아 교직 35년을 회고한다.
교사는 인사 발령 통지문 하나에 정든 근무지를 떠나 낯선 근무지로 옮겨야 한다. 교사의 삶은 고단한 나그네 인생이다. 교육 당국은 교사의 희망을 반영하여 인사 발령을 하지만, 한 학교에 희망하는 교사가 많으면 점수로 순위를 정한 인사 규정대로 한다. 교사의 삶은 서글픈 점수 인생이다.
교사가 한 교육청 관내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광주 순천 등 도시 지역은 경합 지역으로 묶어 10년 이상 근무할 수 없다. 광주 주변 화순, 담양 장성 등은 준 경합 지역이라 하여 15년 이상 근무할 수 없다.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교사는 성적 순서대로 근무지를 배정한다.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은 경합 지역 도시로 배정한다.
나는 다행히 순천 사범을 졸업한 1959년 순천으로 발령받았다. 발령이 늦거나 섬으로 발령받은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때 섬으로 발령받아 고생한 친구들은 그만큼 점수가 많아 교장 승진이 빨랐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순천에서 10년 근무했다. 그동안 솜털 같은 열아홉 앳된 모습 사라진 지 오래다. 빛나는 20대 청춘도 저물어갔다.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 태어나 자라고, 학교 다니고, 첫 교사로 근무했던 고향 순천을 떠나야 했다. 두 아이 돌봐주실 부모님이 계시는 정든 순천을 떠나야 했다. 그놈의 인사 규정 때문에 20대 청춘을 불태운 순천 교단을 떠났다.
운이 좋아 광주로 발령받았다. 금방 10년이 흘렀다. 스물아홉 20대 끝 나이에 광주로 들어와, 30대 끝 무렵 광주를 떠나야 했다. 여인의 30대를 무르익을 대로 익은 황금빛 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내 인생의 30대는 황금빛 삶이 아니었다. 두 아이 엄마로서, 주말 부부 아내로서 학교와 집을 오가는 시계추 같은 삶이었다. 사표를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교장으로 퇴임하신 친정 아버님의 만류로 쓰지 않았다. 그놈의 인사 규정 때문에 30대 황금빛 인생을 시계추로 소진한 광주 교단을 떠났다.
장성으로 발령받았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다. 매일 버스 타고 출퇴근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두 아들 학교 갈 준비시키고, 허둥지둥 시내버스 타고 터미널로 가, 광성여객 시외버스 타고 장성까지 가서, 바쁘게 20여 분을 걸어 학교에 출근했다. 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 이끌고 퇴근하여 집으로 오면, 집은 내 피곤한 몸이 편히 쉴 안식처가 아니었다. 주부와 엄마로서 져야 할 무거운 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또 하나의 고단한 일터였다. 그 힘든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고마운 것은 두 아들이 엄마의 큰 도움 없이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고 20대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15년이 흘렀다. 장성 근무 기간이 끝났다. 옮겨야 했다. 장성에서 15년 근무하는 동안 나이는 40대 갱년기를 지나 50대 중반에 이르렀다. 나는 지쳤다. 허무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지친 내 한 몸 쉴 곳은 없었다. 지친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디 한적한 곳에서 홀로 있고 싶었다. 나는 섬이 있는 신안군으로 희망했다. 남편도 두 아들도 말렸으나 내 의지는 바뀌지 않았다. 지인들은 늦은 나이에 점수 따서 승진하려고 섬으로 가느냐며 의아해했다. 나는 탈출하고 싶었을 뿐이다.
신안군 지도면 매미 섬(선도蟬嶋)에 있는 작은 학교 선치분교로 발령받았다.
선치분교는 전교생이 총 28명이다. 복식 학급으로 운영한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남교사 1명, 여교사 2명, 유치원교사 1명이다. 남교사가 주임 교사다. 점심은 급식실에서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한다. 교직원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한다.
자동차가 없는 섬이다. 갯벌이 좋은 바다는 주민들 삶의 샘터이다. 낙지가 유명하다. 섬에 들어오려면 무안 신월 부두에서 배를 타야 한다. 배는 하루 두 번 오가는데, 썰물 때는 배를 대지 못하기 때문에 밀물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람 불어 풍랑이 심하면 작은 배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파도가 뱃전을 때리고, 물살이 갑판으로 튀어 오르면 정말 무섭다.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쌕쌕이라 부르는 작은 모터보트를 불러 타기도 한다. 도시의 콜택시 같다.
나는 이 섬을 매미 섬이라 부르지만, 공식 이름은 매미 선(蟬)을 쓰는 선도(蟬嶋)이다. 문자가 없던 오래전 옛날에는 매미 섬이라 불렀을 것이다. 매미 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선도(蟬嶋)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로 불리던 마을, 산, 강 등의 아름다운 이름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잊히거니 사라진 경우가 많다. 안타깝다. 매미 섬 이름에 얽힌 전설이 있을 듯한데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 이상 굼벵이로 살다가 화려하게 우화(羽化)하여 불과 열흘 남짓 산다고 한다. 이런 매미의 일생이 긍정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커 조상들은 유난히 매미를 사랑했다. 조정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쓰는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익선관을 매미 관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매미 섬에서 나 혼자만의 자유롭고 고독한 삶, 해방된 느낌의 이런 경험은 평생 처음이다. 사범학교 다닐 때 지방에 사는 친구들의 자취 생활을 부러워했는데, 나이 50을 넘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로소 그 꿈을 이루었다.
이곳 선치분교로 부임한 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지만, 나는 이곳이 참 좋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서두르지 않아서 좋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나 홀로 편히 쉴 수 있어서 좋다. 마음 무겁고 머리 복잡하고 할 일 많은 광주보다 조용하고 단순해서 좋다. 피부를 스치는 맑은 공기와 갯내음 나는 바닷바람이 있어서 좋다. 들꽃 만발하고 갈매기 떼 나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어서 좋다. 손안에 들어오는 적은 수의 아이들 순박해서 좋다. 깜깜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잔잔한 바다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서 좋다. 비바람에 무서운 파도 밀려오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겸허히 고개 숙이고 성찰할 수 있어서 좋다. 소박한 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오만했던 내 삶을 반성할 수 있어서 좋다. 아! 무엇보다도 나만의 시간에 나를 돌아보며 글 쓰는 시간이 많아서 좋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그리고 홀로 있으니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서 좋고, 남편을 이해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좋다. 세속적인 사랑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 비례해 그 사랑도 식어가지만, 참된 사랑은 서로 떨어져 있을수록 더 애틋하면서 강해진다는데, 정말 그렇다.
파도 소리 잔잔한 낭만의 섬 선도, 저녁노을 아름다운 서정의 섬 선도, 매미 선(蟬)을 착할 선(善)으로 고쳐 부르고 싶은 착한 사람들의 섬 선도, 그 안의 작은 학교 선치분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주민들을 사랑하는 엄마 같은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간절히 기도한다.
1995. 10. 15. 일. 밤
에필로그
그 섬을 떠난 지 어언 24년이 흘러 2022년 10월이다.
지금의 선도는 많은 사람이 가고 싶은 섬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수선화가 만발한 봄에는 수선화 축제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아! 그러나 다시는 그 섬에 가고픈 맘이 없다.
추억보다 슬픔이 더 큰 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