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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기

gureum 둔주 2023. 4. 24. 18:20

영화 감상기

1. 노트북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그녀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이 하얗게 지워진 치매 노인이다. 요양병원에서의 의미 없는 하루하루 하얗게 지워진 시간 속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기다리는 한 사람 있으니 그 사람은 매일 그녀를 찾아와 책을 읽어주는 노신사이다.
그녀는 노신사가 찾아오면 빛바랜 하얀 얼굴에 분홍빛 생기가 돈다. 그리고 지워진 기억 속의 희미한 추억을 더듬듯 눈을 지그시 감고 노신사가 읽어주는 스토리에 빨려든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이야기는 내일 읽어드릴게요"
치매 노인은  무척 아쉬운 표정이면서도 순한 아이처럼 노인의 말을 따른다.
주말 드라마에 빠진 주부들이 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리듯, 그녀는 노신사가 읽어주는 스토리에 빠져, 다음 사연 들려줄 노신사를 기다린다. 노신사가 읽어주는 스토리는 하얀 도화지에 그려지는 예쁜 그림처럼 아름답게 저장되고 있었다. 읽어주는 스토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치매 노인 갑자기 환희의 얼굴로 "아! 내 이야기? 이 여자는 나잖아!",  노신사 감격하며 "여보, 나 알아보겠소?"  그녀는노신사의 품에 안기며 "오! 당신, 사랑하는 내 남편!"


시골 별장에 온 도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한 시골의 가난한 청년. 신분의 벽 때문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거 같은 사랑은  청년의 열정적 구애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여인의 용기로 결혼을 하게 되고~~^^, 청년은 그 힘들고 아름다운 사랑의 역사를 하루하루 일기장에 썼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젊음은 어느새 노년에 이르고, 그 아름답던 부인도 늙어 그만 치매에 걸리니, 남편은 기억이 하얗게 지워진 부인에게 절절한 사랑의 추억이 담긴 일기를 읽어주었던 것이다.


2. 첫날밤

마리오란자, 그는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테너 가수이다.

장면 1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극장은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한 관객으로 가득 찼고, 극장 밖은 입장하지 못한 수많은 관객이 비를 맞은 채 몰려있었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되었지만, 그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당황한 매니저 그를 찾아 헤맨다. 그 시각 그는 극장 밖 팬들 앞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열창하고 있었다. 빗속의 팬들은 열광했다.

장면 2
모처럼 공연이 없는 날, 그는 매니저와 함께 시내 구경을 나섰다가 그를 알아보고 몰려든 여성 팬들에 둘러싸이고…, 팬들의 요청을 거절 못해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부른다. 여성 팬들은 그의 감미로운 음악에 취해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다. 그 순간 꽃바구니를 든 한 여성이 그들의 앞을 무표정하게 지나간다. ‘아니, 내 노래를 듣고도 그냥 지나가다니…’ 살짝 자존심이 상한 그는 아가씨 앞으로 다가가 그녀와 눈을 맞추고 노래를 부른다. 아가씨는 그를 이상한 사람 바라보듯 하다가 이내 가던 길을 무심히 가버린다. 그는 야릇한 호기심으로 그녀를 뒤따른다.

장면 3
그녀는 꽃집의 딸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수술만 잘하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도 한다. 그는 엄청난 수술비를 부담하면서 아가씨를 수술대에 오르게 한다.
아직 붕대를 풀지 않은 아가씨, 오페라 극장 귀빈석에 앉아 있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의사는 붕대를 풀어준다. 그는 아가씨를 간절히 바라보며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를 부른다. 아가씨의 눈빛이 환희로 밝아지기 시작한다.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너 가수의 아리아가 들리는 것이다.

1959년에 제작한 마리오 란자 주연의 뮤지컬 영화 ‘첫날밤’의 장면이다. 나는 이 영화를 1968년 재개봉관에서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마리오 란자의 맑고 아름다운 음색을 잊지 못한다. 그 당시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이방인이었다. 그런 나에게 뮤지컬 첫날밤은 환상적인 감동이었다. 클래식 음악 지식이 짧았던 탓에 마리오 란자가 불렀던 노래의 제목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녀의 집 파티장에서 불렀던 칸초네 ‘오 솔레미오’만은 그 감동까지 또렷이 가슴에 남아있다. 아마 학교에서 가창 시험을 볼 때 이 노래를 불러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던 기억과 누님 결혼식 때 축가로 불렀던 추억의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리오 란자, 그는 1921년에 태어나 1959년 영화 ‘첫날밤’ 촬영을 마치고 얼마 안 있어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비록 그의 몸은 갔지만, 그의 맑고 고운 노래는 영원할 것이다.

세계적 테너 가수의 계보는 1대 카루소, 2대 마리오 란자, 3대 주세페 디 스테파노, 4대 루치아노 파바로티로 이어진다. 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남아 지구촌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007년에 세상을 뜬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잘 알려진 것은 영상과학의 발달로 그만큼 대중과 가까이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3. 내 마음의 풍금

강원도 산골 초등학교의 스물한 살 총각 선생님 이병헌과 스물다섯 살 처녀 선생님 이미연.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병헌이 교육이론과 교육현장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갈등할 때, 이미연은 장학사가 온다고 대청소를 하는 등 부산한데도 자기 반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며 자신의 교육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

이병헌과 이미연은 서로 음악을 좋아한다는 정서적 공감으로 함께 풍금 앞에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고 소장하고 있는 LP음반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를 본 아이들이 회장실 벽에 둘이 연애한다고 낙서를 하자, 이병헌은 미연의 눈치를 살피는데 미연은 소문은 금방 사라진다며 개의치 않는다. 이병헌은 날밤을 지새우며 썼다가 구겨버리기를 반복하면서 사랑의 고백 편지를 쓴다.
다음 날, 말끔히 정장하고 밤새워 쓴 사랑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출근하는 이병헌. 아, 그러나 이미연은 정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사표를 냈다는 것이 아닌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이미연이 복도를 지나는 병헌을 보고 나가지만, 이미 저만큼 가버린 이병헌, 전하지 못한 편지 구겨 움켜쥔 뒷모습만 쓸쓸하다.
미연 떠나 멍든 가슴 술로 채운 병헌 비틀거리며 하숙방으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진 채 흐느끼는데 ‘I went to your wedding’ 슬픔처럼 흐른다.
이미연 선생님의 떠남을 제일 기뻐한 이는 이병헌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제자 사춘기 소녀 전도연이다.
그 시절, 촌마을 학교에는 이병헌 같은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한 전도연 같은 사춘기 소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녀 같은 처녀 선생님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콧수염 거무스름한 사춘기 소년도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촌마을 중학교에 음악을 가르치는 처녀 선생님이 부임해 오던 날, 봉산 기슭의 양지 녘에 진달래꽃 수줍게 피어나고 있었다. 여드름 꽃 무성한 소년에게 선생님은 진달래꽃만큼 고왔다.
설레며 기다려온 음악 시간, 선생님이 가르쳐준 노래는 '봄처녀', 소년은 천상의 노랫소리에 취한 듯 그저 멍하니 선생님만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신 봄처녀였다.
꽃샘추위 매서운 날, 도시의 귀한 처자가 객지에서 고생한다며 소년의 어머니가 달걀 한 꾸러미를 홀로 자취하는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소년은 신이 나서 선생님 자취방으로 달려갔다. 소년이 선생님의 자취방에 갔을 때 선생님은 정짓간 부샄에 군불을 때고 있었다. 냉갈에 눈물범벅인 선생님을 본 소년은 선생님을 방으로 들어가시게 하고 부샄 앞에 앉아 군불을 때었다. 그날 이후 소년은 저녁이 되면 선생님의 자취방에 군불 때는 당번이 되었다. 날씨가 따스해지자 소년의 군불 당번도 쌀쌀한 가을이 올 때까지 아쉽게 마쳐야 했다.

어느덧 여름 가고 뒤란의 석류 벌어지는 가을이 왔다. 하루해는 점점 짧아지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소년은 저녁이 되자 군불을 때기 위해 선생님 자취방 정짓간으로 갔다. 아, 그런데 방에서 선생님의 웃음소리와 두런두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소년은 뒤돌아 집으로 달려오고 말았다. 그날 이후 소년은 군불 때려 가지 않았다.

밤새 소복이 내린 눈 위로 밝은 햇살 비추이는 겨울날, 선생님은 교과서에 없는 이태리 가곡
'불꺼진 창'을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사연을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여고 시절의 음악 선생님은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형집행 전 마지막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인민군 장교 앞에서 그는 이태리 가곡 '불꺼진 창'을 불렀다고 한다. 인민군 장교는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민의 노고를 위로하라며 살려줬다고 한다.

겨울 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나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시지 않았다. 결혼하기 위하여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어느덧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소년은 팔십을 눈 앞에 둔 은발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풋풋하다.

* 정짓간, 부샄, 냉갈은 부엌, 아궁이, 연기의 방언


4. 5일의 마중

문화혁명의 혼란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영화 5일의 마중 줄거리는 이렇다.
반역자로 몰려 갇힌 남편, 감옥에서 탈출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부인과 기차역에서 만나기 직전, 아빠 때문에 무용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은 딸의 신고로 붙잡히고 만다.
다시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 종이만 있으면 부인에게 편지를 쓴다. 불 꺼진 밤에도 종이에 빼곡히 부인을 그리는 절절한 사랑을 담는다. 그러나 엄격한 감시망 속에서 몰래 쓴 편지는 부칠 수 없이 차곡차곡 모아만 졌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남편은 무죄로 석방된다. 남편은 5일 집으로 가겠다는 편지를 부인에게 보낸다.하지만 편지 배달은 늦어지고 남편은 편지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어둠의 시대, 부인은 남편이 끌려간 2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수용소에서 5일 집으로 가겠다는 남편의 편지 뒤늦게 배달된다. 부인은 5일 아침, 화장을 곱게 하고 남편의 이름을 쓴 푯말을 만들어 역으로 나간다. 남편은 뒤를 따른다. 역의 철문이 열리고 사람들 쏟아져 나오고 마지막으로 남편이 역에서 나와 반가이 부인 앞으로 간다. 남편, 부인을 안으려 하지만 부인은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부인은 이번에도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후 부인은 매월 5일만 되면 남편의 이름을 쓴 푯말을 들고 기차역으로 나간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나오고 철문이 닫힐 때까지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린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남편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어진다.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남편의 얼굴이 변했음을 이해시키기 위해 남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려는데, 사진첩 속 남편 사진은 모두 오려져 없다. 아빠를 원망한 딸이 가위로 잘라내 버린 것이다. 뒤늦게 잘못을 반성한 딸이 아빠를 돕는다. 부인의 절친했던 친구의 사진첩 속 여럿이 찍은 사진에 남편의 얼굴이 있어 그 사진을 부인에게 보여준다. 부인은 딸에게 사진 속의 남편 얼굴을 짚으며 아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아빠가 지금 옆에 계신 이 분 이라는 딸의 말에 부인은 화를 내며 딸과 남편을 내쫓는다.
남편은 피아노를 조율해 주고, 그 옛날 부인 앞에서 즐겨 연주하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순간 부인은 옛날 남편의 연주 추억을 떠올리며 피아노 치는 남편의 등을 어루만진다. 남편은 피아노를 멈추고 일어나 부인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남편의 품에 안긴 부인, 고개를 들고 남편의 얼굴을 보더니, 기겁하며 남편을 물리친다. 내가 바로 그 옛날 피아노 치던 그 남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부인은 발악하며 남편을 내쫓는다. 남편은 함께 해주지 못한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수용소에서 쓴 편지를 읽어준다. 이처럼 남편의 헌신적 노력에도 부인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심한 세월은 하염없이 흐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매월 5일 기차역으로 남편을 마중 나가는 것. 눈 내리는 추운 겨울, 오늘도 남편은 자전거 수레에 부인을 싣고 기차역으로 나간다. 사람들 모두 빠져나간 빈 광장에 부인과 남편만 남는다. 손에는 남편의 이름을 쓴 푯말을 들고…
부인을 지켜주는 남편의 시선이 애처롭다.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의 사랑이 지고지순하다.

5.랜드 오브 마인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방어하기 위해 덴마크 해안에 수백만 개의 지뢰를 매설한다. 그러나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안으로 상륙하고, 전쟁이 끝난 후 덴마크군은 포로로 잡힌 나치 소년병들을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 시킨다.

칼 상사는 4만 5천 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나치 소년병 열네 명의 관리를 맡는다. 이들은 3달 안에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 칼 상사는 소년병들을 무자비하게 대한다. 밥을 주지도 않고, 병이 나도 쉬게 하지 않으며, 지뢰를 다 없애야 독일로 보내 준다며 소년병들을 학대하는 냉혈인이다.
그러나 칼이 소년병을 학대한 진짜 이유는 나치 만행에 대한 증오이다.

북해의 회색 바다, 부서질 듯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모래 언덕과 넓은 해변은 소년병들에게 지붕 없는 끔찍한 감옥일 뿐이다.
소년병들은 굶주린 배로 엎드린 채 목숨을 걸고 지뢰를 찾아 해체해야 한다. 굶주림, 고통, 공포에 익숙해진 듯 무표정한 소년병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해준 밥 싥컷 먹을 거야"라며 소박한 꿈을 꾸는 천진한 소년들이었다. 그러나, 꿈은 지뢰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냉혈인 칼 상사는 소년병들과 함께 하는 동안 비정한 학대자에서 시나브로 따뜻한 보호자로 변화해 간다. 칼은 소년병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마침내 지뢰 제거가 끝났을 때 살아남은 소년병은 단 4명이었다. 덴마크군은 살아남은 소년병 4명을 또 다른 지뢰 제거 지역으로 배치한다. 나치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그들은 나치 소년병들을 돌려보낼 마음이 없었다.
칼 상사는 명령을 어기고 소년병들을 국경 수백 미터 앞까지 탈출시킨다. 4명의 소년병은 국경이 있는 숲으로 달려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나치군에게 당한 핍박을 나치군 소년병 포로들에게 앙갚음하는 황폐된 인간의 영혼.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는 고해성사다.

#랜드 오브 마인은의 뜻은 지뢰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