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reum 둔주 2023. 8. 14. 11:46

모성 1

어느 빈집 처마에 몸을 푼
어미 개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장대 같이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전 국토 물난리로 허우적거릴 때
마른 젖 빨려는 강아지들
다투어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다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고
어미 개는 주린 배 채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강아지들 곤히 잠든 빈집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주린 배 채우지도 못하고
황급히 돌아온 어미는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입으로 건물 잔해 물어뜯고
앞발로 흙더미 파헤쳐보지만
가망 없는 몸부림만 허망했다

그러나 어미 개는 포기하지 않고
허기진 몸 쥐어짜 울부짖기 시작했다
새끼들이 생명의 끈 놓지 않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울부짖었다

며칠 후 장맛비 뜸할 때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울부짖는 개를 본 사람들이
건물 잔해를 조심조심 걷어내자
흙투성이 강아지들 모습을 드러냈다

여드레 만에 흙더미 속에서 구출된
강아지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어미의 울부짖음을 자장가 삼아
꼬물꼬물 뭉쳐서 자고 있었다.

-둔주(1950~)

모성 2

산불에 타면서
꿈적 않고 웅크린 까투리의 잿더미
요렁조렁 들추다 보니
꺼병이 서너 마리
거밋한 날갯죽지를 박차고 후다닥 내달린다
반 뼘도 안 되는
날개 겨드랑이 밑의 가슴과 등을 두르는 데서
살아남은 걸 보며
적어도 품이라면
이 정도쯤은 되어야지, 입안말하며
꽁지 빠지게 줄행랑치는 뒷덜미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본다.

-조성국(1963~)

모성 3

어머니 한숨소리에 잠을 깨니
팔베개한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있었다
자는 척 가만히 있었다

머리 쓰다듬으시며
깊은 한숨으로 읊조리시는 소리
-어쩌다 그런 몹쓸 병 얻었냐
  불쌍한 내 새끼

막상 결핵 걸린 나는 무덤덤한데
정작 아파 괴로운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지는 밤
잠은 멀어져만 갔다.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