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역린
정조 재위 일 년, 정조를 죽이려는 숱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살수들이 정조가 잠든 지붕을 뚫기까지 했다. 정조는 잠자리를 옮기는 등 노론 벽파와 힘든 싸움을 했다. 영화 역린의 역사적 배경이다.
영화는 정조 임금, 정순 왕후 등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들과 갑수, 을수 등 허구적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긴장감을 높인다. 다만 갑수와 을수의 서사가 충분치 않아 스토리가 끊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이들의 서사를 살려 16부작 시리즈로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런 이유로 영화의 줄거리를 갑수와 을수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악의 화신 광백은 어린아이들을 수직으로 뚫린 땅굴에 가두고 잔혹하게 살수로 훈련시킨다. 광백은 이들의 어깻죽지에 이글거리는 불도장을 찍어 통제한다. 어깻죽지의 낙인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 숫자가 아이들의 이름이다.
77노미는 깡이 제일 세다. 그는 새로 끌려와 220노미 낙인을 받은 어린아이를 동생처럼 돌본다. 그리고 둘 만의 이름을 짓고 형제가 된다. 형은 갑수, 동생은 을수다.
광백은 왕을 죽이려는 세력과 결탁하고 갑수를 거세해 궁의 내시로 들여보낸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어린 세자일 때이다.
갑수는 어린 세자를 보필하는 내시로 궁중 생활을 시작하여 세자가 보위에 오른 후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한다. 내시 갑수가 상선 내시에게 지시받은 임무는 왕을 감시하고 때를 노려 왕을 암살하는 것이다. 왕은 자신을 죽이려는 노론 벽파 세력에 둘러싸인 불안 속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내시 갑수뿐이다.
갑수는 내시 상선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왕을 지극히 모신다. 내시 상선은 지시를 따르지 않는 갑수를 협박하고 죽이려 한다.
결국 갑수는 상선을 죽이고, 옷자락에 피가 묻은 줄도 모르고 왕의 시중을 들다가 정체가 발각되고 만다.
왕이 갑수에게 묻는다. 어린 세자 시절부터 둘만의 추억을 말하며 기억하는지 묻는다. 갑수는 그날의 추억을 날짜 시각 그리고 자신이 궁으로 들어온 몇 번째날이었다는 것까지 소상하게 기억하고 아뢴다.
왕이 묻는다.
"그날도 너는 살수였느냐?"
갑수가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왕은 세자였을 때 둘만의 비밀스런 추억의 그날을 떠올린다. 그날 세자는 광에 있는 뒤주에 들어갔다. 궁에서는 세자가 사라졌다고 난리가 났다. 내시 갑수는 광으로 들어가 뒤주 안에서 울고 있는 세자를 달래어 나오게 한다.
그날 세자가 물었다.
"너는 왜 궁에 들어왔느냐"
그날 갑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누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갑수는 왕을 살리기 위해 상선을 죽였다.
왕은 갑수를 출궁 시킨다. 그리고 죽지 말고 살라고 명령한다. 금위대장에게는 추포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을수는 광백의 지시에 따라 청부 살인을 하는 최고의 살수가 된다. 을수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광백에게 224낙인을 받아 궁으로 들어온 나인 월혜이다. 월혜도 왕을 죽이려는 세력의 지시를 받는다.
왕을 죽이려는 거사일이 다가오는데, 살수의 선봉장 을수는 사랑하는 여인 월혜랑 몰래 도망치기로 약속한다. 월혜는 궁에서 마지막 할 일이 있으니 그 일을 마치고 만나자고 한다. 월혜는 왕의 침소를 정리하면서 왕의 의대에 몰래 쪽지를 남기고 나온다. 그러나 바람에 쪽지가 떨어져 발견되고 만다. 쪽지에는 왕을 죽이려는 자들의 음모를 고발하는 글과 월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광백을 처단해 달라는 청원이 담겨 있었다.
월혜가 보따리를 안고 급히 궁을 나온다. 이를 본 을수가 반가이 다가가는데, 아, 월혜는 뒤쫓아 온 왕에게 붙잡혀 다시 궁으로 들어가 버린다.
드디어 거사일 밤이 되었다.
눈이 뒤집힌 을수를 선봉으로 살수들이 왕의 침전 존현각으로 몰려간다. 살수들과 근위병들의 살육전이 벌어진다.
갑수는 왕을 죽이려는 자들의 명단을 적은 책자를 들고 궁으로 들어와 천신만고 끝에 존현각까지 온다. 그때 을수의 칼날이 왕을 향한다. 갑수가 달려가 을수를 막는다. 근위대장 홍국영이 을수를 향해 총알을 날린다. 갑수가 을수를 안고 총알을 받는다. 갑수가 쓰러진다. 을수가 갑수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갑수가 숨을 거둔다. 두 번째 총알이 을수의 머리를 관통한다. 이렇게 반란은 진압되었다.
새날이 밝았다
왕이 직접 광백의 소굴을 찾는다.
광백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괴기스럽게 웃는다. 왕은 말없이 칼을 뽑는다.
광백이 말한다.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꿔지간?"
왕의 칼이 번득인다.
광백 피를 흘리며 죽는다.
정조 임금의 치세가 시작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주인공 정조임금은 배우 현빈이 맡았다. 현빈은 잘 생겼다. 멋있다. 정조 임금도 그리 잘 생겼을까.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면 한결같이 멋지고 잘 생긴 배우들이 그 역을 맡는다. 다소 엉뚱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만이다. 역사적 위인들의 얼굴은 조금 못 생겨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야 나 같은 사람도 위안이 되지.
2023. 10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