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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絶陽애절양

gureum 둔주 2024. 2. 18. 09:25

다산 정약용은 제자 황상을 무던히도 아꼈다. 다산이 황상에게 준 32장의 메모와  편지를 모은 서간첩은  황상이 스승의 쪽지글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제자를 생각하는 다산의 마음이 뭉클하다.  스승을 향한 황상의 곡진한 마음이 감동이다.

1803년 봄 바닷가 노전리에 사는 백성이
칼로 제 남근을 잘라버린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황상이  이 슬픈 사연을 시로 썼다. 제목이 애절양이다.
관리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 이미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을 군적에 올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자 ,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기막힌 현실을 노래한 것이다.
제자의 시를 본 다산은 황상을 불러 입단속을 했다. 황상은 아전의 자식이다. 아전의 자식이 관리의 포학을 고발한 내용이어서 공연한 사단을 만들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산 자신도 공분을 못 이겨 나중에 같은 제목의 애절양 시를 지었다.
다산은 시의 1구를 제자 황상의 시 1구와 일부러 똑같이 써서 제자의 시와 연관성을 밝혔다. 시 중간에도 같은 어휘가 여럿 있다.

황상은 1803년 봄에 애절양을 지었고
다산은 1803년 가을에 애절양을 지었다.
황상의 애절양은  7언 12구이고  
다산의 애절양은  7언 20구이다.
다산의 애절양을 옮긴다.

哀絶陽애절양

蘆田少婦哭聲長
노전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도 길구나
哭向縣門號穹蒼
현문 향해 곡하면서 하늘 보며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
전쟁 나가 못 오는 법 그래도 있다지만
自古未聞男絶陽
남근을 잘랐단 말 옛날에도 못 들었소
舅喪已縞兒未澡
시아버지 상 끝나고 아인 아직 핏덩인데
三代名簽在軍保
삼대의 이름이 군보軍保에 올랐구나
薄言往愬虎守閽
가서 암만 호소해도 문지기는 범과 같고
里正咆哮牛去皁
이정은 으르대며 외양간 소 끌고 가네
磨刀入房血滿席
칼을 갈아 방으로 가 피가 자리 가득하니
自恨生兒遭窘厄
자식 낳아 곤액 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의 음행이 어이 허물 있으리오
閩囝去勢良亦慽
민 땅 아이 거세함은 실로 또한 슬프도다
生生之理天所予
생생의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라
乾道成男坤道女
하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네
騸馬豶豕猶云悲
말과 돼지 불알 깜도 서럽다고 말하는데
況乃生民恩繼序
은혜로 차례 이을 생민이야 오죽할까
豪家終歲奏管弦
부잣집은 1년 내내 풍악소리 잡히면서
粒米寸帛無所捐
곡식 한 톨 비단 한 치 내는 법이 없다네
均吾赤子何厚薄
다 같은 백성인데 차별 어이 이리 하나
客窓重誦鳲鳩篇
객창에서 자꾸만 시구 편을 외우누나.

# 12구 閩囝去勢良亦慽 (민 땅 아이 거세함은 실로 또한 슬프도다)

당나라 때 민땅의 백성을 골라 환관을 삼았다. 환관의 살림이 자못 부유했으므로  이곳 사람들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거세부터 했다고 한다. 밥술이라도 뜨고 살려고 자식을 거세한 것이다. 제자 황상은 애절양 6구에 이 고사를 인용했다.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