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고 1993년 1월 26일 양력
93년 1월 3일 겨울 눈이 앞을 볼 수 없도록 내리고, 구정을 지난 하루 목포에서 해남으로 발령받아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목포에서 해남으로 오니 마음이 울적하고 일손이 잡히지 않고 허둥 되고 안정이 안 되었다.
퇴근 무렵 목포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계곡으로 빨리 오라는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차를 몰고 눈 속을 헤치며 우슬재로 와 넘으려니 눈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데 마침 제설차가 모래를 뿌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뒤따라 갔다. 다행히 사고 없이 우슬재를 넘을 수 있었고 다음 차들은 운행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고향집에 오는데 눈 속에 교통사고처리 중인경찰을 보았다. 무심코 지나 집에 왔다. 집에는 마루 아래 많은 신발 이 있고, 동내 아짐들이 웅성거리고 슬픈 표정으로 모여계셨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계셨다. 난 무슨 일이냐고 묻고, 아버지 소식을 듣은 후 마리가 띵했다.
아버지께서 사정리 정미소 앞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셨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그 사고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고 정신이 들었다.
현장에 갔을 때 동내 아제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창수 영수 남열 등 모두 모여있고, 경찰은 아버지 시신이 있는 곳에서 요리 저리 움직이며 구급차에 옮기고 있었다.
둘째 형님과 난 구급차를 타고 해남읍 해남 병원으로 갔으며 아버지를 영안실에 안치하고 어쩔 줄을 모를 때쯤 해남읍 큰동서가 왔다. 송대은 경위와 같이 왔다. 큰동서의 매제라고 했다. 진도에서 파출소장을 한다고 했으며 시신을 다루는 전문가였다. 아버지 시신을 만지며 다친 머리에 압막붕대로 싸매고 반드시 눕도록 하셨고, 시신의 피를 닦아주시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정말 고맙고 감사했으나 그때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고 어리둥절했다.
아버지는 뺑소니 차에 치어 현장에서 별세하셨고, 차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산소에 안치한 후 경찰서를 드나들면서 백방으로 삥소니 차량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땅을 치고 통곡한들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 하늘나라 가신지 30년이 지났다.
그래도 난 그때가 엊그제 같다.
자전거 타시고 다니시던 아버지
불초한 이 자식 죄송합니다.
아버지영전 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합니다.
못난 이 자식 용서 하여 주십시오.
2024년 2월 5일
배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