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속살을 찾아
1 시작 길
진도의 속살 맛보러 보배 섬 가는 길
마산면 야산의 넓은 황토밭 들을 지난다.
머잖아 황토고구마 줄기로 초록물결 이룰
빈들의 붉은 황토바다는 봄 햇살 가득하다.
2 녹진 전망대에 올라
울돌목 가로지른 진도대교 지나
전망대에 올라서서 동서남북 둘러본다.
크고 작은 섬들 품고 있는 바다에
우유빛깔 물안개 가물가물 피어올라
한 폭의 수묵화처럼 평화롭다.
햇살은
물결위에 비늘처럼 반짝이고
나는
마음의 단추 하나 풀고
삶의 긴장 내려놓는다. 그리고
장군을 생각한다.
울돌목 소용돌이 물살의 울음은 멀고
명량대첩 장군의 호령은 가깝구나.
칼을 든 장군의 전투는
장엄한 서사시였으나
붓을 든 장군의 삶이
슬픈 서정시였던 것은
섬들 품어 안은
저 평화의 바다 때문이리라.
3 벽파진 충무공 전첩비
제주 가는 바닷길의 시작은
여기 벽파의 포구였다.
오만한 천재 추사가 울분을 삭이던
이 바다에서 임은 그럴 여유마저 없었다.
적을 무찔러 백성을 구해야하는
生卽必死 死卽必生의 바다였다.
적을 무찌른 명성을 질투하는
못난 군주의 마지막 칼날을 피해
죽음을 고민하던 백척간두의 바다였다.
세월 흘러 임의 흔적은 사라졌으나
임의 발길 머물렀을 거대한 바윗등에
추사를 흠모하던 후학, 소전의 붓으로 새겨진
임의 전첩비만 무심한 봄 바다에 외롭다.
4 삶의 소리
슬픔도, 기쁨도, 한도
축제가 되는 땅 진도는
예술의 고장이자
소리의 고장이다.
‘진도 와서 소리 자랑 마라’는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북소리의 리듬 따라
역동적 율동과 부드러운 춤사위로
물고기의 유영처럼 무대를 휘돌아 채우는
여덟 명 여인들의 폭발적인 북 놀이에
심장은 터질 듯 고동친다.
미칠 듯 흥분된다.
백설보다 흰 소복의 살풀이춤은
진도가 아니면 감히 구경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어느 귀신이 감히 이 춤사위 앞에서
무너져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삶의 소리는 예술이 되고
슬픔도 축제가 되는 진도
진도민속예술단의 혼신을 다한 공연에
나는 감동하고, 열광한다.
그리고 침묵했다.
5 세방낙조대에서
1
망망대해 장엄한 동해의 일출이
희망 품은 젊은이가 맞아야 할 태양이라면
관매도 붉게 물들이는
세방낙조대의 처연한 일몰은
추억 많은 늙은이가 바라볼 석양이다.
2
하늘과 바다와 관매도가
붉은 석양빛으로 슬프게 물들어가는
낙조를 보기 위해 세방낙조대에 갔다.
그러나 해질녘 세방낙조대는
옷깃 여미기도 힘든 폭풍의 언덕이었다.
하늘은
검은 구름 몰려오는 어두운 회색이었다.
하늘과 바다와 외로운 섬들이
석양빛으로 물들어 슬프다는
아름다운 낙조는 볼 수 없고
밀려오는 파도만 바위에 부서지면서
고래의 포말로 피어오르더니
하얗게 소멸하고 있었다.
6 잔인한 사월 -팽목항에서-
다투어 솟아오르고 깨어나는 계절이다.
대지는 싹 틔워 올리느라 바쁘고
봄볕은 번데기 깨우느라 분주한
사월은 부활의 달이다.
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아픔의 그 날
만물이 생동할 때
꽃도 피기 전 꽃다움 그대로 멈춰버린
사월은 잔인한 달이다.
자연은 생명을 보듬어 꽃 피우는데
어미는 허공을 보듬어 가슴에 묻었다.
꽃보다 예쁜, 그의 맑은 영혼 부르듯
노란 리본 봄바람에 나부끼는
항구는 무심하게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