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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ahdma

gureum 둔주 2019. 7. 18. 11:16

어머니의 부활

어머니의 기억 1

해거름에 마실 나온 마을 아줌마들 사이에서
엄니의 허리에도 못 미치는 키 작은 아이는
엄니로 착각한 엉뚱한 아줌마의 치마폭 잡아 끌다
무안하고 당황하여 울먹였어요. 

어느새 다가온 우리 엄니
우는 얼굴 치마로 감싸주시니
아이는 이내 해맑아졌지요.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결혼하여 가장이 되고,
이 땅의 어른 세대 고희에 이르렀어도, 그 날이
빛바랜 흑백영상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추억 속의 엄니는 지금도 젊고
추억 속의 나는 지금도 키 작은 아이입니다.


어머니의 기억 2

들판이 황금색을 띄어가는 가을날
소년은 오전부터 배가 아팠어요.
오후 들어 소년의 배는 바로 설 수 없이 아팠어요.
엄니는 아픈 소년 데리고 동네 약방으로 갔지요.
소년의 배를 이리저리 만지신 약방 아저씨
맹장염이라며 해남읍 서외과로 수술예약 해주셨어요.

엄니는 소년과 용당에서 오는 5시 버스를 탔어요.
자갈 많은 신작로길 털털거리며 달리는 버스에서
소년은 김인호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어요.
-전주병원 원장님은 장로님이다. 수술하기 전에 꼭 기도를 한다.-

어둑어둑할 무렵 해남읍에 도착한 소년은 말했어요.
-엄니, 전주병원으로 가고 싶어요.-
엄니는 잠시 망설였어요.
서외과로 예약해 주신 동네약방아저씨 때문이었어요.  

소년은 한옥기와집 전주병원 수술대에 누웠어요.
엄니는 유리창이 있는 수술실문 밖에서 기도했어요.
원장은 부분마취로 수술을 한다고 했어요.
전신마취는 공부하는 학생 머리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래요.

원장님의 기도가 끝나고, 복부에 소독약 바르는 서늘함을 느끼고
수술부위 마취주사 따끔하고........ 수술이 시작되었어요.
말똥한 정신에 복부의 아픔은 몽롱했어요.
아픔은 몸의 일부가 매스에 잘리는 느낌과 함께 뇌에 아련히 전달됐어요.
원장이 간호사에게 지시하는 소리, 소년 자신의 신음 소리.
그리고 엄니의 기도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어요.

입원실로 옮긴 소년은 열흘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니의 병수발 받으며 입원한 열흘은 
소년이 평생 엄니와 단 둘이 있었던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억 3

어머니 한숨소리에 잠을 깨니
팔베개한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있었다.
자는 척 가만히 있었다.
머리 쓰다듬으며 깊은 한숨으로 읊조리는 소리
-성기야, 어쩌다 그런 몹쓸 병 얻었냐. 불쌍한 내 새끼-

막상 결핵 걸린 나는 무덤덤한데
정작 아파 괴로운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지는 밤
잠은 멀어져만 갔다.


어머니의 기억 4

어머니가 대두병에 갓난강아지 다린 약 담아 오셨다.
열병 후유증으로 생긴 치루 수술로 허약해진 몸에 좋다는 약이란다.
그 약 먹은 후 몸으로 느끼게 체력이 좋아졌다.
전화로 어머니께 좋아졌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또 해오셨다.
이번에는 욕심껏 한 번에 많이 먹었다.
배탈이 났다.
설사를 얼마나 했던지 약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는 또 해오셨다.
설사해서 몸만 충나 못 먹겠다고 짜증을 냈다.
같이 온 동생 덕님이가 말한다.
-오빠, 그것이 뭔지 아요. 뱀이어라우. 뱀 사서 고와온 것이요-
망치로 맞은 듯 멍했다.
핑 도는 눈물 감추느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부활

배 아파 낳은 자식 아홉 기르실 때
아픈 새끼는 불어서라도 살려내
잃은 자식 하나 없이 키워내신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젊어 홀로 되신 후
아랫돌 빼어 웃돌 괴듯 머리 짜내 살림하시고
자식 여덟 결혼시킨 어머니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이면 교회 마루에 엎드려
자식들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가슴에 모시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희생
머리에만 기억될 뿐, 가슴에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야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준
나는 청개구리였습니다. 
자식으로서 가슴에서 우러나는 효도 한 번 못한
나는 불효자였습니다.

어머니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계실 때도
아픈 가슴 애써 외면하고
형님이 모셔야 된다는 머리의 냉정한 판단을 따랐습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들
이제야 뼈아픈 후회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야 아픈 가슴에 그리움이 쌓입니다.

머리에 기억으로만 남은 어머니
너무 늦었지만
이제는 가슴에 모시렵니다.

인디언들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때를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당신은 불효자식의 가슴에 아직 살아계십니다.


    
       -햇살 밝은 어느 봄날,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1943년?-


 어머니의 운명殞命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어떤 어머니는 서둘러 저승길 가십니다.
중병으로 누워계신 어미 앞에서
책임 미루는 자식들 부담 덜어주려는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입니다.

여기
이승의 끈 놓지 않으려 안간 힘 쓰시는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효도의 시간 조금 더 주고픈 어머니
마지막 사랑의 힘으로 저승길 미루십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부린 후 3년을 더 사셨습니다.
-엄마 돌아가시면 나 정말 많이 울 거 같아-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아들의 독백 들으신 어머니
이승의 끈 붙들고 저승길 미루시니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 다시 나고, 얼굴 화색 돌아옵니다.
길어야 삼 개월이라던 담당 의사도 놀라는 기적이지요.

-그만하면 됐다. 내 아들아!-
어머니 스르르 숨길을 놓습니다.
마지막 짚불 사그라집니다.

엄마,
자식 없는 세상으로 편히 가시오.
어머니의 운명殞命 앞에 선 아들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어머니 입관을 지키는 아들
어머니 얼굴 만지며 하직 인사드립니다.
엄마,
다음 생에서도 엄마 자식으로 태어날게

-2018년 8월 30일 殞命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금목서 1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아는 꽃
짙은 향기 따라
눈길 옮겨야 비로소 보이는 꽃

볼품없는 색깔의 작은 꽃으로 피어나
사랑받지 못한 아픔을
향기로 승화시킨 꽃

장미보다 아름다운 꽃도 그 빛을 잃어
어둠에 묻히는 밤
침묵이 깊을수록 향기는 짙어져
지쳐있는 심신에 편안한 잠을 주는 꽃

금목서 2

성진리 동서 집에 가면
아내 닮은 처형 버선발로 반긴다.

금목서 피어나는 가을
성진리 동서 집에 가면
금목서 짙은 향내
처형보다 먼저
닫혀진 사립문 넘어와 반긴다.

처형
하늘나라로 떠나신 금년 가을엔
그 짙었던 금목서 향내
담을 넘지 못한다.

 2018년 가을 둔주 정성기

윤슬

가을 햇살 눈부신 오후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의 광주천 내려 보며
망중한의 여유를 즐긴다.

한결 낮아진 고도의 햇살
흐르는 물결위로 쏟아지니
사금파리 뿌려놓은 듯
가을 햇살 튕겨내는 잔물결

영롱한 구슬처럼
반짝이는 윤슬
떠오르는 손주 얼굴

두 팔 벌려 달려와
품에 안겨 재롱 떨며
터지지 않는 언어로
쫑알대던 손주 윤슬
청자 빛 가을 하늘에
가득하다.


※ 윤슬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 우리말





아들을 위한 변명

막내 고운이는 영미를 집으로 데려올 때면
엄마께 음식 맛있게 해달라는 주문이 많다.
영미에게 엄마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고운의 숨은 마음이다.
최여사는 정신 없다.
얼굴에 행복의 꽃을 피운 채

장남 경운은 엄마가 반찬거리 만들어주면
짜증을 낸다.
엄마의 고생 덜어주려는 속 깊은 마음이다.
최여사는
마음이 아프다.


獻 詩

우슬재 넘어가는 지아비 바라보는 원망의 세월
가슴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바스러져버린 한이여
이제는 지옥 불에도 타지 않는 사리만 남았습니다.

아들 낳아, 아들 없는 친정 소원 풀었으나
아들 위한 희생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은
상처를 품어 안은 슬프고 아름다운 진주입니다.





큰형수님

1. 입으로 들어간 음식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 더러우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현란한 말솜씨 자랑하는 사람들
그만큼 말로 지은 죄 클 수 있지만
우리 큰형수님은 말씀 거의 없어
그만큼 말로 지은 죄 없으니
예수님의 사랑 받기에 충분합니다.

2.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
오른손이 한 일을
온 세상이 다 알게 자랑하여
예수님의 얼굴 찌푸리게 하지만
우리 큰형수님은 천성이 겸손하여
오른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니
예수님의 칭찬 받기에 충분합니다.

3.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 살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모님의 제삿날 형제들 자고 갈 때
우리 큰형수님은 친정어머니처럼
이것저것 정성껏 싸 주십니다.
사랑 없으면 할 수 없는
예수님 말씀의 실천입니다

4.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교인들과 이웃 사람들, 일터의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형제들, 모두 다 하나 같이
큰형수님의 희생과 봉사의 삶을 칭찬합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칭찬입니다

큰형수님은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 같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녹아짐으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소금 같은 사람입니다.

5. 살아서 물질적 축복도 받고, 죽어서는
천당 가겠다는 욕심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
그러나 막상 예수의 가르침대로는 살지 않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문을 막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오신 형수님은
세상이 먼저 알고 효부 상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큰형수님은 천당 가실 겁니다.





부모님 사진

1943년?
봄햇살 밝은 날
우리 구남매의 아버님과 어머님
행복을 흑백사진에 담았습니다.
어머니 무릎에 안긴 아이는 큰 누나입니다.

75년?의 세월 흘렀지만,
부모님의 행복했던 시절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멋진 아름다움으로 간직되었군요.

동생 덕님의 집에 모인 형제들
하룻밤 지새며 정 나눔 할 때
큰 누나가 보관 중인 사진을 가져오셨어요.

아버님과 어머님
20대 청춘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자랑스럽게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다섯 째 둔주 드림









 연작시

2017년 가을 편지

1. 9월이 오는 소리

가는 여름이 아쉬운 이들은
늦여름이라 하고,
가을을 기다리는 이들은
초가을이라고 하는
오늘은
8월 31일입니다

가는 세월 붙들 수 없는 무력함은
아직 늦여름이라며 위로 받으려하고
지금 이 시간이 덥고 힘든 이들은
초가을이라고 부르며
잡히지 않는 희망에 젖어보는 날
오늘은 8월 31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9월
나의 심장은 벌써
보헤미안의 붉은 피로 고동칩니다.


2. 가을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음유시인 이동원이 부른
‘가을 편지’의 노랫말 한 구절입니다.

나도 추억 속의 임들께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 저녁입니다.
3. 내 인생의 가을

봄은 땅의 기운 받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생동합니다.
때문에 봄은 늘 푸른 기대이지요.

가을은 따가운 햇살 받아
열매를 익게 하지만,
불타는 단풍으로 소멸합니다.
가을이 쓸쓸한 이유이지요.

시인 윤동주님은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란 시로
인생의 가을 준비했지만,
준비한 가을을 맞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가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내 인생의 가을을 맞고 말았습니다.
2017년의 가을이 무거운
또 다른 이유입니다.
임의 가을은요?


4. 남한산성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한 줄의 이 짧은 기록을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이리 묘사했지요.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군량은 시간과 더불어 말라갔으나,
시간은 성과 사소한 관련도 없는 낯선 과객으로 분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
쌓인 눈이 낮에는 빛을 튕겨 냈고, 밤에는 어둠을 빨아들였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장안의 화제랍니다.
저마다 제 입맛대로 해석한 정치인들의 촌평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을 거라는 건방진 상상을 합니다.

소설은 편 가르기 식 감정을 배제합니다.
소설은 굴욕의 역사를 작가 특유의 문장으로 냉정하게 담았습니다.
문장은 간결합니다.
서릿발 같이 차갑고 예리한 칼날 같습니다.
영상으로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입니다.

소설 남한산성을 강추합니다.


5. 소년이 온다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소설에서
소년은 단지 친구를 찾기 위해
광주의 그곳에 있었습니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년은
광주 5‧18묘역에 잠 들었습니다.

30여년이 흐른 뒤 소년은
한강의 소설로 부활합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소년 어머니의 한 맺힌 넋두리에
마음이 무겁고, 가슴은 먹먹합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의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으며
광주를 알았고, 작가로서 광주를 찾고,
소년이 살았던 중흥동 집을 찾고,
소년의 형을 만납니다.

작가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을 이미 뛰어넘었습니다.
유럽 쪽에서 더 각광 받기도 합니다.
북핵 문제를 다룬 뉴욕타임즈 기고문이
미국에서 큰 방향을 일으킨 것도
작가의 명성이 무겁기 때문일 겁니다.


6. 진도바다에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요.-
-세대차이 나서 대화가 안돼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시대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힘을 잃어가는 시대입니다

학교의 교화교육敎化敎育이 권위를 잃어가는 시대에
가정의 감화교육感化敎育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낚시하는 친구 따라 진도바다에 갔지요.
주고받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기대한 고기는 별로 잡지도 못했지만
깊은 바다 둘만의 고무보트위에서
낚시를 바다에 드리운 채
친구가 들려준 아들의 고백
-아버지는 제 인생의 멘토이십니다.-

친구가 살아온 삶의 과정들이
아들에게는 감동과 감화였으니
아들의 고백은
친구 인생의 자랑스러운 훈장입니다


7. 가을 동백

오매 동백 피었네

1987년 고향친구가 선물한 동백 분재
최근 몇 년 꽃피지 않더니,
가을 들어 꽃망울 자리 잡기에
아침저녁 보면서 친구 생각했는데,
아직 단풍도 지지 않은 가을에
이리 붉게 피어버렸습니다

열 달 못 채운 채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처럼
튼튼하게 피워 올리지 못해
마음이 애잔합니다.


8. 오페라 이야기

인문학여행의 이름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페라이야기와 아리아감상시간이
수강생들에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오페라가 대개 애절한 사랑이야기고,
프리마돈나가 죽는 비극적 결말로
일반 대중이 선호하는 장르인데다
동영상으로 감상한 아리아의 감동이
좋은 반응을 받는 이유였을 겁니다.

푸치니가 작곡한 토스카의 대표적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동영상으로 보냅니다.
토스카의 연인이 사형당하기 전날 밤
창밖의 별을 보면서 부른 아리아입니다

나와 추억을 공유하는 50년 묵은 친구들은
서민선 선생님의 음악 시간으로 돌아가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9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노래방에 가면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을
멋지게 부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는
몸도 영靈도 순수한 이팔청춘 때
큐피트 화살의 과녁이 되었다네요.

쉬이 시드는 꽃잎 같은 첫사랑은
황순원 소나기의 소년처럼
가슴앓이로 끝났지만,
친구는 지금도 그 소녀가 생각나면
이 노래 부른답니다

임들도
친구처럼 아련한 추억 한 조각
가슴에 묻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
동영상으로 보냅니다.


10. 가을 단상斷想

단상1 상념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바람결이
점점 차가워집니다.
‘또 이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상념에 젖습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죽는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롱펠로우의 ‘인생 예찬’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심장 굳세고 어엿하다지만
소리죽인 북 마냥 언제고 둥둥거리는
무덤에의 장송행진곡이란다.-


단상2 죽음

주변에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 만큼 살았응게 죽는다는 것, 한나도 두렵지 않소.-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지쳐 삶을 포기한 사람
수양으로 삶을 달관한 사람
지키거나 이뤄야 할 가치가 목숨보다 중하다고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는 아직 죽음이 두렵습니다.

단상3 인생은 마라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라톤과 인생은 사뭇 다릅니다.

마라톤은 42.195km라는 한정된 거리를 달립니다.
마라톤은 출발선을 떠나 반환점을 찍고,
출발선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입니다
중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인생마라톤은
탄생이라는 출발점에서
죽음이라는 종점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종점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반환점도 없고 출발점으로 되돌아 올수도 없습니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인생마라톤은
지금
어느 지점을 달리고 있을까요?  


11. 마지막 가을편지

황금물결 넘쳐나던 들녘은
빈들로 공허하고
불타는 단풍의 산하山河는
잿빛으로 을씨년스러운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임들께
마지막 가을 편지를 씁니다.

나는 임들과 함께한
가을의 추억과 가을의 정서를
편지에 담아 보냈습니다.
그리고 관련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편지에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동영상으로 보냅니다.
작곡은 우리고향 출신으로 
분단의 아픔 때문에 불운한
안성현 선생님입니다.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둔주 드림









대한민국 정치판 소회
-국정농단부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까지-

1 정치무상

작금의 정국을 바라본 소회
권력이 무상하니
인생이 무상하구나!

저승의 박정희 왈
살았을 땐 구국의 영웅이고,
죽어서는 호국의 신으로 부활하여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제삿밥 먹고 있는데,
저 못난 딸년 때문에
개돼지들이 민주시민으로 깨어나니
저승의 내 신세가 까마득해졌구나!

이승의 박근혜 발악
나는 아버지 따라 했을 뿐인데,
게다가 아버지가 했던 것
반의반도 못했는데 개돼지백성들 저 난리야?
나는 긴급조치로 억압도 안 하고,
재벌 돈 뜯는 것도 아버지의 반도 아직 안 했는디
나는 봬가 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절대로 안 내려갈 거다. 


2 열 받 어

자고나면 뻥뻥 터지는 사건들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한 분야 잠잠할 날이 없다
세상사란 것이 원래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역사의 발전 과정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사건의 경우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해결되지 않는 사건만 날마다 터지는 악순환이니
국민만 열 받 어.


3 종편유감

시인 박목월이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출출하여 막걸리 마신 자리에서
적당한 취기로 펜을 들어 휘갈기니 한 편의 시가 되었소.
이후
이 시를 분석 연구한 논문만 수십 편이라네요.

어느 봄날
큰 스님이 ‘산불조심’이란 푯말을 보고 근엄한 표정으로
‘심조불산’이라고 읊조렸다오.
이후 수많은 대중과 수행스님들
이 심오한 화두의 깊은 뜻을 해석하기 위한
법회, 야단법석 열었다오.

어제
그네님이 대한민국 언론사 간부들 청와대로 모아놓고
말 같지 않은 말들 쏟아내니 오늘 종편 방송에서는
그네님의 그 말씀 속에 담긴 깊은 뜻 헤아리느라
입에 거품이 나네요.


4 그네와 세월호

근혜 탄핵되니 세월호 떠오르고
근혜 구속되니 세월호 입항하네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갈 때
무정했던 7시간과
자신의 구속이 걸린 검찰 조서 사인 때
꼼꼼히 확인하는 7시간은
근혜의 민낯을 보여주는 잣대였으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대한민국의 소용돌이치는 정국을 보면서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놀랍고 무서운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5~체하는 인간

~ 체하는 인간,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 체하는 인간을 싫어하는 인간, 그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다
두 본능은 충돌한다.
인간사 갈등의 원인이요, 인간의 모순이다.
잘난 체 안 하고, 잘난 사람 질투 안 하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만으로
인간은 도덕군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체하는 인간의 유형은 다양하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뻥 튀어 드러내는 과시형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 겸손형
자랑거리는 늘어놓고 부끄러움은 감추는 위장형
자랑이나 부끄러움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형
들어주고, 동감의 표정 지어주고 그저 웃고만 있는 침묵형

나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고,
잘난 사람 싫어하고
그런 내가 싫어 자학하고
술 마시고 망가졌다
한때 신의 섭리에 도전한다는
건방짐으로 자살도 생각했다.

그렇게 살고 살아오다
이렇게 칠십이 되어간다.


6 모순
1
잘난 체 하고 싶은 마음
잘난 체 하는 자 싫은 마음
칭찬받고 싶은 마음
칭찬하기 싫은 마음
칭찬받는 자 싫은 마음
간섭하기 좋아하는 마음
간섭받기 싫어하는 마음
비판하기 좋아하는 마음
비판받기 싫은 마음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
존재 드러내는 꼴 보기 싫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인정하기 싫은 마음
몸이나 마음 아픈 사람 말로만 하는 위로는 쉬어도
잘 나가는 사람 말로만 하는 축하도 쉽지 않는 마음

인간은 모순덩어리이다

모순을 해결하는 답은?
겸손이다

‘오른 손이 한 일 왼 손이 모르게 하라’
예수의 말씀은 바로
겸손의 미덕을 풀어 설명한 가르침이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사람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설교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겸손했을까?
7 참세상

참은 하나지만
거짓의 수는 한없이 많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거짓이 참을 뒤엎는 이유다.

참말
참모습
참사랑
참사람

참말 하는
참모습의
참사람 많은
그런 정치

참사랑 넘치어
소외된 사람들의 위로가 되는
그런 종교

정치인과 종교인만
참사람으로 채워진다면
참세상의 95%는 달성될 것이다.
나머지 5%는 신의 영역이다.

그런 세상
참세상을 그린다.


8 반기문

반기문의 대통령 불출마?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불출마 선언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명예는 찾을 수 없었다.
칠십 넘은 노인의 품격도 없었다.

대통령 되려는 준비 안 되었음을 인정하고
역량 또한 부족했음을 고백하는
진솔한 반성이라고는 없었다.
애꿎은 여론만 신경질 적으로 탓한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비전과 소명의식이라곤 없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뱀장어처럼 잘도 빠져나가는 노회한 영감
꽃가마 타고 군림하고픈 권력욕만 넘치고 넘친
욕심 많은 노인일 뿐이었다.

그의 고향
여기저기 세워진 우상들
반기문 공원, 반기문 동상, 반기문 찬가
반기문은 이미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깨지는 시간은 금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9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삼팔선
미국과 소련이 대한민국 지도 펼쳐놓고
북위 38도 선에 자를 대고
붉은 잉크 주~욱 그어 허리 자른 선
이제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은 선

휴전선
남북이 총부리 맞대고 싸우던 전선을
경계로 쉬고 있는 지표위의 선
아직 한반도의 허리를 옥죄고 있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의 상징선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위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았다
남북은 하나 되고 지구촌은 열광했다

두 정상 단둘이 도보다리위에서의 정담 모습은
차가운 머리의 이성으로 세운 목표에
따스한 가슴의 감성으로 접근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압권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선을 지우고
평화를 앞당기는 길이라 믿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한다.






도시탈출

1. 움직이는 음악 감상실

2019. 1. 21 월요일
눈 내리지 않는 건조한 겨울날
묵을수록 좋은 간장 같은 친구들과
초미세먼지 숨 막히는 도시를 탈출
남쪽으로 달렸다.

시속 80을 넘나드는
움직이는 음악 감상실 안에서
부처의 실눈으로
흐르는 풍광 응시하는
명상은 없었다.

일상에서 탈출한 해방감으로
삶의 긴장 풀어버린 친구들
걸쭉한 입담 과시하며
나이는 잊고 청춘은 되살렸다.

2. 고성사 보은산방

다산선생 머물며
제자들 가르쳤던 고성사 보은산방
사의재를 나선 스승 따라 올랐을
제자 황상 생각하며
흙길 밟고 올라야 했건만
승용차로 너무 쉽게 오르고 말았다.

단청빛깔 화사한
맞배지붕 보은산방
겨울의 한낮햇살은 밝으나
사람 온기 따스한 초가지붕 옛집
그 날의 정취는 찾을 수 없구나.

강진만 내려 보이는 고성사에서
바다 멀리 흑산도의 형님 그렸을
다산의 슬픈 분노로 숙연해진다

뱃사람 통해 편지 주고받으며
학문의 업적 쌓은 형제는
정쟁에서는 비록 패배했으나
역사의 승자로 부활하여
후대를 사는 우리의 가슴에
훌륭한 스승으로 살아있다


3. 강진만 갈대밭

탐진강 줄기 흘러드는
강진만은 청정하다.

와서
보고
걸으며
느끼라는 듯
찾는 이들 배려한 갈대밭 길

갯벌위의 청둥오리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한가하고
겨울 햇살 튕기는 물비늘 반짝이는
바닷물은 유유하다.

이 한가로운 갈대밭 길위에 멍하니 서서
이 맑은 청정공기 마시는 심호흡만으로
칠십 노인 심장의 피는
청춘의 붉은 피로 맑아질 것이다.
4. 병영성

유적지를 찾을 때면
왠지 심란한 감상에 젖어 편치 않음은
자긍심을 일깨우는 유적도 있지만
부끄러움으로 반성하게 하는 유적
슬픔과 분노 몰려오는 유적이 있어서이다.

병영성 성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적의 침입 막기 위한 방어용 옛 성은 사라지고
보여주기 위한 성의 복원은 아직 멀어 황량하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흥얼흥얼 읊조리는 친구의 감회에 동감이다.

일행은
텁텁한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고
음악감상실에 올라 도시로 향한다.









진도의 속살을 찾아

1. 진도 가는 길

진도의 속살 맛보러 보배 섬 가는 길
봄 햇살 가득한 마산면의 넓은 황토바다
가물가물 아지랑이 피어오른 빈들이지만
머잖아 황토고구마줄기 초록물결 이룰 것이다.


2. 녹진 전망대에 올라

울돌목 가로지른 진도대교 지나
전망대에 올라서서 동서남북 둘러보니
크고 작은 섬들 품고 있는 바다는
우유빛깔 물안개 희미하게 피어올라
한 폭의 수묵화처럼 평화롭다.

햇살은 물결위에 비늘처럼 반짝이고
나는 마음의 단추 하나 풀어
삶의 긴장 내려놓는다.

백의종군 장군을 생각하니
울돌목 소용돌이 물살의 울음은 멀고 
명량대첩 장군의 호령은 가깝다.

섬들 품어 안은 저 평화의 바다가 있어
칼 든 장군의 전투는 장엄한 서사시였고
붓 든 장군의 삶은 슬픈 서정시였던 것이다.


3 벽파진 충무공 전첩비

제주 가는 바닷길의 시작은
여기 벽파의 포구였다.
 
오만한 천재 추사는
이곳에서 울분을 삭였으나
임은 그럴 여유마저 없었다.

임에게 이곳 벽파진은
적을 무찔러 백성을 구해야하는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벼랑이었고
적을 무찌른 명성을 질투하는
못난 군주의 마지막 칼날을 피해
죽음을 고민하던 백척간두의 바다였다.

세월 흘러 임의 흔적은 사라졌으나
임의 발길 머물렀을 거대한 바윗등에
추사를 흠모하던 후학, 소전의 붓으로 새겨진
임의 전첩비만 무심한 봄 바다에 외롭다.


4. 삶의 소리

슬픔도, 기쁨도, 한도
축제가 되는 땅 진도는
예술의 고장이자
소리의 고장이다.

‘진도 와서 소리 자랑 마라’는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북소리의 리듬 따라
역동적 율동과 부드러운 춤사위로
물고기의 유영처럼 무대를 휘돌아 채우는 
여덟 명 여인들의 폭발적인 북 놀이에
심장은 터질 듯 고동친다.
미칠 듯 흥분된다.

백설보다 흰 소복의 살풀이춤은
진도가 아니면 감히 구경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어느 귀신이 감히 이 춤사위 앞에서
무너져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삶의 소리는 예술이 되고
슬픔도 축제가 되는 진도
진도민속예술단의 혼신을 다한 공연에
나는 감동하고, 열광한다.
그리고 침묵했다.


5. 세방낙조대에서

망망대해 장엄한 동해의 일출이
희망 품은 젊은이가 맞아야 할 태양이라면
관매도 붉게 물들이는 세방낙조대의 처연한 일몰은
추억 많은 늙은이가 바라봐야 할 석양이다.

하늘과 바다와 관매도가 붉은 석양빛으로
슬프게 물들어간다는 낙조를 보기 위해
해질녘 세방낙조대에 갔지만, 그곳은
검은 구름 몰려오는 회색빛 하늘 아래
옷깃 여미기도 힘든 폭풍의 언덕이었다.

하늘과 바다와 외로운 섬들이 석양빛으로 물들어 슬프다는
아름다운 낙조는 볼 수 없고, 밀려오는 파도만 바위에 부서지면서
고래의 포말로 피어올라 하얗게 소멸하고 있었다.


6 잔인한 사월  -팽목항에서-

다투어 솟아오르고 깨어나는 계절이다.대지는 싹 틔워 올리느라 바쁘고봄볕은 번데기 깨우느라 분주한 
사월은 부활의 달이다.

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아픔의 그 날
만물이 생동할 때
꽃도 피기 전 꽃다움 그대로 멈춰버린
사월은 잔인한 달이다.

자연은 생명을 보듬어 꽃 피우는데
어미는 허공을 보듬어 가슴에 묻었다.

꽃보다 예쁜, 그의 맑은 영혼 부르듯
노란 리본 봄바람에 나부끼는
항구는 무심하게 평화로웠다.








천사(1004 天使)의 섬 나들이

1. 천사대교

거울처럼 잔잔한 청자빛깔 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섬, 섬
그리고 또 섬, 섬, 섬

압해와 암태를 잇는 천사대교 7.22Km를
거북이 속도로 통과하는 차창 밖 정경은
환상적인 아름다움, 신비로운 평화였다

그러나
막상 섬 속으로 들어오니
낮은 산 아래 가난한 마을과 농토는
이 땅의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으니
주민들의 삶 역시 고단할 것이다.
 
아직은
외지인들 맞을 준비 안 되어 있어
관광을 위해 찾아온 이들은 불편하고
섬 속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겠지만

머잖아
이곳도 도시의 색깔로 단장되면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섬의 신비로운 평화는 사라질 것이고
주민의 가난한 삶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2. 고하도

고희의 나이에 다시 찾은 고하도는
이십대 고뇌의 청춘 때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건너 유달산 바라보며 고독을 달래던
그 날의 고하도가 아니었다.

유달산 가리는 검푸른 해송들이
용틀임 하듯 우람한 자태로 하늘을 찌르니
그 날의 탁 트인 시원한 풍광은 사라지고
해송의 기상에 압도된 숙연함으로 옷깃 여민다.


3. 충무공모충비

충을 그리워한다는 모충비慕忠碑
비의 이름이 낯설다.
숨은 의미를 헤아려본다.

임진전쟁 끝 난 백여 년 후
바다의 장군과 임의 후손 뜻을 모아
임의 호령 살아있는 목포 앞 고하도에
임의 충을 그리는 모충비를 세운 뜻은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의 우리들에게
임의 충을 기억하고, 임의 충을 따라
일본을 찍고, 세계로 뻗으라는 준엄한 명이다.





4. 생명력의 위대함이여

고하도 바닷가
커다란 바위틈에 뿌리 내린 작은 소나무
그 푸르른 생명력이 싱싱하고 아름답다.

자리를 탓하지 않고 뿌리 내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 뻗는 세월 얼마일까
가늠할 수 없지만 그 깊이는 짐작이 된다.

저리 아름다운 자태 이루는 동안
수없이 많은 눈비와 거센 바닷바람에
생명의 갈림길 맞았을 것이지만
소나무는 그 역경 모두 이겨내고
봄 햇살 받으며 위대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오! 위대한 생명의 힘이여









종교 단상

1 아들 잃은 두 어머니 이야기

어린 아들 잃은 슬픔으로
애간장 녹아드는 두 어미가 있었습니다.

한 어미
슬픔을 위로받으러
존경하는 교회의 장로를 찾아가니
-자매님, 축하합니다.-
당황하는 어미에게 장로님 이어지는 말씀
-천사는 죄 지을 틈도 없이 너무 일찍 죽어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이라오.-
죽은 아들 하늘나라 천사 되었으니
슬픔 거두고 기뻐하자는 장로의 말씀에
어미는 천사 된 아들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의 기쁨 안고 돌아옵니다.

또 다른 어미는 아들의 죽음 받아들일 수 없어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 좀 살려 달라 매달리니
ㅇㅇ사의 스님 찾아가면 아들 살려 줄 거라기에
스님 찾아간 어미 아들 살려 달라 애원하자
아들 살려주겠다며 스님이 말씀 하십니다.
-마을로 내려가 좁쌀 다섯 알만 얻어오면 아들 살려 주겠소.
다만 한 사람도 죽은 이 없는 집이라야 하오-
마을로 내려온 어미
좁쌀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죽은 사람 없는 가정은 찾을 수 없어 깨달음을 얻으니
비로소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싯다르타의 첫 번째 비구니 제자 이야기


 2. 진리는 하나

죽어서
하늘나라 가는 소망으로
현실의 슬픔을 기쁨으로 이기는
신앙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깨달음으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는
신앙
 
종교란?
결국 죽음에 대한 고민이다.

진리는 하나
종교는 진리라는 나무의 가지

지구촌을 감싸주는
커다란 진리의 나무가 있다.
진리의 수많은 가지들
지구촌 인간들의 그늘이 되어준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
자기의 그늘만 진리라 믿으며
그 가지에만 매달린 채
다른 가지의 인간을 비난한다.

부처님과 예수님,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종교만 진리라 우기는 인간들 내려다보며
서로 미안하다고 화해의 악수 하지 않을까?


3. 사랑, 함부로 말하지 말라

우리의 옛 어머니들
자식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내놓을지언정
자식 사랑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옛 어머니들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쉬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 믿지 않는 자식은 없다.

진짜 귀한 것은
함부로 내놓지 않는다.
진짜 소중한 진심은
함부로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진짜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입으로 나온 말이라고 다
진심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사랑한다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정작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거기에도 사랑이 목마른 사회
국민 사랑한다고 핏대 올리는
정치꾼의 말을 믿지 않는 사회이다.

제발
마음에는 없는
사랑한다는 말
함부로 내뱉지 말라


4. 종교, 그 불편한 진실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와 여사제 브리세이스의 대화
아킬레스  : 그대가 믿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브리세이스: 신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다.
아킬레스  : 그대가 모르는 신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신은 인간의 유한성을 부러워한다는 것이야.”
브리세이스: 멍청하면 동정이라도 하지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죽는다.
몰라야 되는 신의 세계를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나?
그는 역사의 영웅으로는 남았지만,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드라마 ‘구해줘2’에서
기업 회장이 하반신 마비로 고생하다가
목사의 안수 기도를 받고 일어나 걷는다.
긴가민가하던 마을 사람들
아멘 외치며 신의 노예로 전락한다.
회장과 교회의 장로 은밀히 돈 주고받는다.

존경받는 고승 열반에 들려고 할 때
스님의 제자 서둘러 고승을 바르게 앉힌다.
앉은 자세로 열반한 고승 등신불이 되다?
속세의 불자들 몰려든다.

종교의 불편한 진실
아는 만큼 실망할 것이며, 모른 만큼 감동할 것이니
기적을 갈망하며 종교에 의지하고 싶거들랑
제발 깊이 알려하지 말고, 무조건 믿을 지어다.



2부 사람, 자연, 삶
소박한 꿈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오늘을 위하여
여명의 시간 잠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말을 덜 해야겠다
미워하는 마음 죽여야겠다.
이해하는 마음으로 오해를 없애겠다.
어제보다 더 많이 읽고 많이 써야겠다.

오늘도 어제처럼
땀 흘리는 운동으로 건강을 챙겨야지
설거지를 깨끗이 해야지
발코니 식물들에게 사랑의 눈길 보내야지
kbs 클래식 방송 들어야지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어제보다 오늘 하루 
얼굴의 주름 조금이나마 더 늘 것이고
그만큼 조금 더 늙을 것이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자연현상, 인간관계, 정치상황, 경제상항 등으로
어제보다 못한
오늘 하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하여
여명의 시간 잠에서 일어나
오늘을 맞는다.
자화상

작은 키지만, 운동 기능이 좋아
축구, 배구 등 직장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밥 빌어먹기에는 턱도 없었다.

시골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고
부모님 여기저기 자랑했지만
도시에서는 도토리 수준일 뿐이었다.

천성이 게을러
해야 할 일 미루고 미루다
발등에 불이 붙어야 허둥지둥 했다.
손재주 없어
만들고 그리는 미술은 영 젬병이다.

주변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 글 좀 쓴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책은 나에게 자장가이다
글로써 이름을 날려본 적 없는 우물 안 개구리이다.

그러나
친목체육대회 때 선수로도 뛰고
학생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고
무사히 정년퇴직하여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독서와 글쓰기로 일상이 안 심심하고
귀하다는 고희의 나이도 먹었으니

내 인생
이순신처럼
역사에 기록될 성공의 삶은 못 되어도
이완용 같은
역사에 기록될 치욕의 삶이 아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보는 삶의 과정들
자랑보다
반성과 후회가 많을지라도
이제는 모두 감사할 따름이다


일상

소소한 것에 감동하고
소소한 것에 속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여

말 뱉고 나서 후회하고
말 참고 나서 아쉬워하는
평범한 내 일상이여


입춘 편지

변덕 심한 공기의 흐름은
아직도 겨울 칼바람이지만,
땅은 벌써 봄의 기운이 돌아
눈 덮인 산골짜기의 어느 양지바른 곳에
복수초 노랗게 피워냈을 겁니다.

임께서도 봄의 기운 받아
회춘하시면 좋겠네요.



칠십 고개1

칠십 고개
까마득했는데
어느새 칠십 고개에 올려졌다.

이 고개 오르려고 
애쓴 것도 없는데
세월은 나를 여기까지 올려놨다.

칠십 고개에 들어선 첫날
작심삼일일지라도
내가 나에게 명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공자님 흉내 내려하지 말라
나이자랑도 하지 말라

뻗어가는 여린 가지 지탱해주는
고목의 목질부처럼
후생들의 디딤돌이 되어라
밟고 갈 수 있는 디딤돌만 되어라






칠십 고개2

칠십 고개 오르지 못하고
인생 여행 마친 사람도 많은데
칠십 고개 오른 축복에 감사한다

칠십 고개의 나는
우거진 숲 속 한 그루의 고목나무
사람 사는 세상의 당당한 어르신이다
그래도 있는 듯, 없는 듯 살자













양동시장1

허망한 욕망으로 가득 찬, 가슴 비우고
사람냄새 목마른, 빈 가슴 채우러
사람 사는 낮은 세상으로 떠난다.

그곳에 가면
비릿한 바다냄새
파릇한 농촌냄새
고소한 도시냄새
땀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있다

그곳에 가면
팔고 사려는 흥정소리
구경꾼 웃음소리
소리의 하모니
사람 사는 소리가 있다

나는 오늘도
가슴 가득 찬 허망한 욕망 비우고
빈 가슴 사람냄새로 채우기 위해
양동시장으로 간다.


양동시장2

우리가 지향하는 삶은 이상 세계의 추구이지만,
그것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것 참 허망하다
우리의 삶 그 중심축은 일상에 자리한다.
소소한 일상 속에 참된 삶의 진리 숨어 있다
소소한 일상의 최전방은 시장이다
나는 오늘도 양동시장에 간다.

내 임기 안에
주가 삼천 시대를 열겠습니다.
뻥이오.

정치인의 뻥은
어리석은
국민의 열광으로 튀어 오른다.

한 되를 한 말로 튀어준다는
뻥튀기 가게에 줄서있는 서민들

쏟아지는 튀밥

한 되가 한 말로 뻥 튀듯
살림도 뻥 튀면 얼마나 좋을꼬
가게 주인도, 가게를 찾는 서민도
펑, 소리에 잠시 같은 꿈 꾸어본다.








홀로 있어봐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홀로 고고한 명상의 시간을 가졌지요.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광야에서
홀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지요.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위대한 성인이 아닌 평범한 우리도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반성, 결단, 성숙, 성찰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나의 안타까운 친구 bs
지금 홀로 있습니다.
육체는 구속 되었으나 정신은 더 맑아지는
혼자만의 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곡성할머니시집

차마 말로는 풀 수 없어
가슴 깊이 응어리가 되어버린 한
팔순 넘어 배운 한글로 드러내니

연필로 꾹꾹 눌러쓴 서툰 글씨는
할머니의 맺힌 한 풀어주는
한 편의 감동적인 노래가 되었다.
 
가난 –최영자-
모 심그러 가도 쌀 두 되
똥소매 퍼내
하루 점도록 보리밭에 찌글어도
쌀 두 되
기적

민들레 홀씨는
아이의 날숨 보다 가벼운
바람에 실려와 긴 시간 기다렸다

그곳은
기름진 땅이 아니다.
들꽃 무성한 풀밭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 오가는 시멘트길이다

수없이 지나는 발길 피하고
미화원 빗질도 용케 피하며
민들레 홀씨는 봄을 기다렸다

봄이다
시멘트길 틈새로 뿌리내린
민들레 홀씨는 서둘러 꽃대를 올린다.
노란 꽃 피웠다
딱 세 송이

와!
예쁘다
강하다
대단하다





발마사지

내밀기도 부끄럽지만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몸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손이 재주 부릴 수 있도록
묵묵히 몸을 지탱해 주는 발

발을 손으로 마사지한다는 것은
육체의 정과 기가 손과 발을 통해
서로의 가슴으로 흘러드는 교감의 시간이다.

발마사지는
머리로 이해하는 관념적 연대를 넘고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적 연대를 넘어
손발이 함께하는 실천적 연대이다

하여
발마사지 시간은
혈관 타고 흐르는 
보람의 시간이고, 감동의 시간이며
체온을 느끼는 정 나눔의 시간이다







발가락부터

집을 그릴 때 화가는 지붕부터 그리지만
집 짓는 목수는 기둥부터 그린다고 한다
집 짓는 순서대로 그리기 때문이란다.

만약
사람을 그릴 때 예쁜 부분부터 그린다면
내 부인 최연희는 발가락부터 그릴 것이다.

사십 년 넘은 세월 부부로 살아오면서
아름답던 얼굴은 주름져 그 빛을 잃고
고운 두 손도 어느새 거칠어졌지만

점점 불어나는 체중을 버티며
지구를 세 바퀴 이상은 걸었을 두 발은
아직도 갓난아이 발처럼 곱고 예쁘다

나이 들면서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최연희
발마사지를 해준 이후로 단잠을 잔다.

사랑하는 부인 최연희의 감춰진 발
발마사지 하면서 비로소 자세히 본다
무거워진 몸을 지탱해오면서도
두 발의 피부는 아직도 여리고
종아리의 각선미는 여전히 아름답다

내 부인 최연희를 그린다면
나는
최연희의 발가락부터 그릴 것이다

둔주 정성기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자 씨, 발마사지 받으시게요.”
소녀의 수줍음 아직도 남아있어
두 다리 내놓기 주저하시는 노인
복지사의 애교 섞은 도움으로 바르게 누우신다.

양말 벗기고 바짓자락 무릎위로 올리니
푸석푸석한 피부에 메마른 근육
쭈글쭈글한 노인의 두 다리는
가벼워진 몸 하나 지탱하기도 버겁다.

스프레이와 발크림으로 피부 촉촉이 한 후
용천혈 가볍게 엄지로 눌러 기의 흐름을 돕고
몸의 각 기관과 관련된 혈자리 찾아 지압하니
노인은 어느새 아이처럼 가볍게 잠이 드신다.

지금은 늙어 힘 빠진 노인의 두 발이지만
인생의 무거운 짐 두 발로 당당히 버티고
오매불망 자식위한 희생과 사랑으로
궂은 땅 밟아 오신 어머니의 두 발이다.

은근히 노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발마사지
반성하며, 어머니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냘픈 두 다리 정성 다해 주무른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발과 손의 만남

남구장애인복지관에 들러
발마사지 봉사하는 날입니다

발마사지 받는 이들은
생의 시작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온 이들과
불의의 사고나 병마로 장애우가 된 이들입니다.

맨발 드러내는 어색한 긴장
가벼운 대화로 풀며 마사지를 시작합니다.

직립 인간의 중력을 버티는 두 발을
인간의 궂은 일 도맡은 두 손이
연인의 뜨거운 애무처럼
쓰다듬고, 주무르고, 누르고, 밀어 올리니
두 발과 두 손은 서로의 심장을 이어주는
연대의 다리가 됩니다.

뭔가 도움 되는 일 해보자는
냉정한 머리의 결정으로 시작한
관념적 사랑이
발의 감동과 손의 보람으로
뜨거워지는 순간입니다.

어찌
감히
제자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자신을 낮추시는 사랑의 본을 보이신
그분과 견주어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머리로 차갑게 이해하는 사랑보다
손에서 발로 이어지는 실천적 연대가
심장을 더욱 뜨겁게 하는 사랑이라는
소중한 깨우침 하나 얻었습니다.
늙은이와 어린이1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경험과 지식이 많은 늙은이
짧은 세월의 삶만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어린이

육체는 늙고 굳어 눈과 귀는 멀어지고
움직임 또한 느려졌지만 입만은 왕성한 늙은이
몸은 부드럽고 유연해 눈과 귀는 밝고
한시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움직이는 어린이

왕년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하루가 어제인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왕년의 경험과 지식만을 고집하느라
격변하는 사회의 진화에 적응하지 못한 늙은이는
밀려오는 정보의 파도를 감당하지 못한다.

농경문화의 시대
노인의 경험과 지식은
사회의 큰 자산이었지만
21세기 늙은이의 경험과 지식은
박제된 박물관의 전시물일 뿐이니
늙은이가 꼰대로 전락한 배경이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어린이는
세상 모두가 호기심과 탐구의 대상이므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지양 부리면서 터득하고 알아간다

늙은이도 어린이처럼 호기심어린 탐구적인 생활로
밀려오는 정보를 과거의 경험과 지혜에 융합하면
이 땅의 어르신으로 진정 존중 받을 것이다


늙은이와 어린이2

어린이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그의 그릇은 비어 있다
어린이는 그릇을 채우려고
왕성하게 지식을 빨아들이고
경험을 쌓아간다

늙은이
왕년의 지식과 경험이 많아
그의 그릇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격변의 21세기에서
이미 그의 지식과 경험은 화석이 되었다.

늙은이는 그릇을 깨야한다
차고 넘치나 별 쓸모없는 그릇을 깨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빈 그릇 준비해야
21세기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술정보의 홍수 담을 수 있다.







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

걸으니
걸음의 속도만큼
삶의 속도는 느려지고
삶의 여백은 넓어졌다

나는
걸으면서 사유(思惟)한다
걸음의 거리만큼 사유는 깊어진다.
잡념은 사라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봄비

한 주일 쌓인 세속의 때 씻고
한 주일의 평안을 위해 성당 가는 길
때 씻어주고 평안을 주겠다고 속삭이듯
봄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젖니 나오려는 아이 잇몸 간지럽히듯
새순 터지려는 발버둥이 간지러운 지
광주천변의 이름 모를 나무
봄비 맞은 우듬지 가볍게 흔들고 있다

세속의 때 씻고
평안 얻으러 성당 가는 길
봄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봄비 젖은 대지의 어린 싹들
먼저 솟으려는 아우성 소리
들리는 듯하다









산유화

진달래, 철쭉처럼
눈높이 맞추어 피어나는 꽃

벚꽃, 산수유 같이
꽃그늘 만들어주는 키 큰 나무들의 꽃

이 꽃들이 흐드러질 때면
벚꽃축제, 철쭉축제, 산수유축제 등
꽃 축제로 산 아래는 바쁘다
 
그러나
눈높이 낮추어
고개 숙이고 내려 보면
아~ 작고 예쁜 꽃들
저마다
수줍고 빛나는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다

예쁘다 뽐내지만, 다투지는 않고
올망졸망 어울림이 아름다운
키 작은 꽃들의 잔치

고개 쳐든 사람들
목에 힘이 들어간 사람들
그런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키 작은 꽃들의 잔치

무등산은
이 작은 꽃들의 잔치로
지금 정신없이 바쁘다
 


산 물 별

산처럼 의연하게
물처럼 겸손하게
별처럼 고독하게


겨울 단풍

시들어 말라비틀어지고
빛마저 바랬으면서
지난 가을
불타는 환호에 취한
허영심 버리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채
마른 바람에 흔들리는
너!
차~암
측은하구나.


무등산 편지


정상에 서면
통쾌함, 시원함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지만

진짜는
숙연함, 경외감으로
겸손해집니다.

산은
아픔을 고백하지 않아도
알아서 치유해줍니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본
서양인들과 달리

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인식한
조상들의 삶이
이해되는 순간입니다.

5월 6일 무등산에서 둔주 정성기












무등산의 가을

무등산 하면 떠오른 이미지들
장엄, 온화, 부드러움, 포근함, 등등
그 이미지들을 형상화 하면
어‧머‧니

무등산은 어머니다
넓은 치마폭으로 자식들 감싸주는
생명의 원천 어머니이다
 
어머니 산, 무등산은 지금
한여름 그늘이 되어주던
녹색 치마 벗고
울긋불긋 단풍 치마로
갈아입고 있다

머잖아 단풍치마 마저 벗으면
빈 몸으로
하늘의 하얀 천사 맞으며
새봄의 생명
잉태할 것이다







두물머리

용봉천이 광주천에 합류되는 두물머리
그곳에 가면 무등산 입석대를 형상화한
인공 절벽으로 쏟아지는 폭포가 시원하다.

이 폭포를 이루는 물줄기의 시원은
입석대 바라보는 장불재 뽀짝 아래
녹색바람 시원한 숲속의 옹달샘이다.

숲속 옹달샘의 작은 물 한 방울
골짜기 적시며 흐르는 물줄기와 하나 되어
낮은 곳은 채워가고, 넘치면 다시 흘러
뭇 생명 품어 안은 광주천으로 들어가니
옹달샘의 그 맑고 투명했던 순결은 잃고 말았다

그러나
잉어 떼 무리 짓고, 왜가리 날아드는
두물머리 폭포에서 눈부신 햇살의 부름으로
하늘에 다시 올라 몸 무거워지면
숲속 옹달샘으로 돌아갈 꿈을 꾼다.







빨간 우체통과 공중전화박스

한 때는
수많은 사연 가득 담았던 빨간 우체통
지금은
주인 잃은 주민등록증 달랑 한 매

정성 다해 써내려간 손 편지
우체통에 넣은 뒤, 답신을 기다리는
설렘과 긴장의 시간은 사라졌다

한 때는
이용하는 사람 줄섰던 공중전화박스
지금은
눈비 잠시 피하게 하는 비닐우산 같은 존재

추운 겨울, 발 동동 구르며
수화기에 들려오는 두두두두 신호음에
심장도 따라 뛰던 날들은 전설이 되었다.

우체통과 공중전화 밀어낸
스마트폰의 세상은
더 빨라지고, 더 편리해 졌다.

그러나
그만큼
삶의 여백은 좁아지고
낭만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아 모순된 인간
삶의 역설이여!


봄과 가을

낮과 밤의 길이가 비슷하여
기온 또한 비슷한 계절, 봄과 가을
그러나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여름을 향하여 채워가는 봄
겨울을 위하여 비워가는 가을

낮이 점점 길어지고 점점 더워지는 봄
밤이 점점 길어지고 점점 추워지는 가을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설렘과 희망의 봄
만물이 잠들 준비하는 쓸쓸한 고독의 가을

가슴이 벌렁벌렁하여 나가고 싶은 봄
가슴이 허전하여 떠나고 싶은 가을

꽃그늘 아래 상춘객들의 잔치로 붐비는 봄
낙엽 수북한 숲길 걷는 여인의 뒷모습 쓸쓸한 가을

들뜸의 계절 봄이 사랑 찾기 좋은 계절이라면
사색의 계절 가을은 아픈 사랑 돌아보는 계절이다.






진불암의 만추

두륜산 깊은 곳, 보물 숨겨 놓은 듯
태고의 숲으로 감춰진 진불암 가는 길
세속의 때 흐르는 땀으로 씻으며 도솔천 이른다.
 
불타는 단풍의 설렘과 낙엽 진 나목의 쓸쓸함도
그 아늑한 평온에는 스며들지 못하도록
늘 푸른 동백 숲으로 감싸인 피안의 진불암

뜰을 밝히는 오후의 햇살 한 줌까지
응진당 창살에 머무는 진불암에서
잠시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난다.


12월 광주천의 억새꽃

억세게 강했던 지난여름의 초록은 빛을 잃었고
온 몸의 물기 한 방울까지 하늘로 날려버려
말라비틀어진 잎, 그 잎들의 마지막 버팀으로
그대는 아직도 고고하게 하늘을 향합니다.

이미 제 빛을 잃고 녹슬어 버린 마른 잎들은
스치는 작은 바람에도 몸서리치는 겨울 문턱에서
휠지언정 꺾이지 않는 꽃대궁 따라 하늘거리는
그대는 하늘로 향하는 하얀 손길의 기도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며 매듭지어 가는 시간
날은 점점 추워질 것이고
그만큼 따뜻함이 필요한 시간
사윈 초겨울 볕이 은빛 억새꽃에 비추입니다.


향일암

그 淨土의 세계 쉬이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향일암 가는 길, 계단은 가파르다

계단 하나하나 딛고 오를 때마다
헉헉 몰아쉬는 가픈 숨에 백팔번뇌 하나하나 벗으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중생의 세계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섰음 알리 듯
선녀의 휘날리는 옷자락 같은 실안개
가을비로 촉촉한 단풍 숲에 고요히 깔린다.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가랑이 연상되는
눅눅한 습기 음습한 자연석 일주문
한 사람씩만 겨우 통과를 허용하니
오가는 이들 겨우 비키며 향일암에 이른다.

시원한 전망
끝없이 펼쳐진 남해의 푸른 바다
이곳은
선비 한량이 시문을 펼치는 풍류의 땅이고
연인들의 사랑을 나누는 낭만의 땅이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야망의 땅이지
마음을 다스리고 욕망을 제어하는 수도의 땅은 아니다

아! 원효는 이 유혹의 땅에
무슨 심사로 수도의 암자를 세웠단 말인가?
다시 스님 원효를 생각한다.

이놈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느니라.
스님의 가르침 뇌리를 친다.
게발선인장

그대의 뿌리는 
태양열 불타는 한낮의 시련과
별빛 총총한 깊은 밤 고독을
견디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저 머나먼 열대 사막의 나라

그대의 마디 여린 줄기는
하늘 향해 뻗어 오르지 못하고
땅을 향해 아래로 늘어진
겸손의 몸짓

그대의 꽃잎은
겨울 없는 그대의 고향 그리워 
겨울 되어서야 꽃피우는
수줍은 새색시의 노을빛 치마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줄기 끝마다 곱게 피워 올린
꽃. 꽃. 꽃.

그대가 있어
추운 겨울이 따스하다






동백 1오매또 필락하네가을 내내 산통 치르더니첫눈 오는 오늘, 붉은 문 열리네
나에게 시집 온 지.
어언 30년!
그대여친정아버지 마음으로 축하해주오
해 바꿔 봄 되면, 으짜든지 살라고
여린 가지 무성히 뻗지만집사람 무지락시럽게 잘라부러
올해도 딱 한 송이뿐이오붉은 핏덩이 같은 동백 한 송이
그것 하나 피우려고 애써온 잉태의 시간은활짝 핀 절정의 순간에 툭 지고 마는
처절한 아름다움보다 장하오, 위대하오.햇살 은혜 짧은 갑갑한 발코니에서
맑은 이슬 한 방울 맛보지 못하고한여름 소낙비에 샤워 한번 못해보고
가을 무서리 한번 받아보지 못했어도2018년 첫눈 내리는 대설 아침
자궁문 열리듯 붉은 꽃망울 여는위대한 생명의 힘이여!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여!

 첫눈 나리는 대설 아침에 둔주 정성기

동백 지다2

결국 이렇게 졌네
시들어 추해지기 전
사육신 성상문처럼 고고하게
남강의 논개처럼 장렬하게

아직도 불타는 노을빛 그대로
툭 떨어져버렸네

추운 겨울 붉은 핏빛으로 피어나
짧은 절정의 시간 통째 떨어지는
너의 그 오만한 지조는
슬픈 오페라의 주인공









이팝나무

갈증으로 목 타들어가는
사막의 나그네에게
신기루가 오아시스로 보이듯

배고픔으로 곯아가던
보릿고개 백성들에게
저 새하얀 색깔의 꽃무리는
환장하게 먹고 싶은 쌀밥이었으나
막상 먹을 수 없는 쌀밥이었으니

배고픔으로 곯아가던
보릿고개 백성들에게
하얀 꽃 눈부신 저 이팝나무는 
그림의 떡 같은 원망의 나무였을까
배고픔 잊게 하는 치유의 나무였을까

주린 배 움켜쥐고 넘어야 했던
보릿고개의 전설은 점점 희미하고
추억으로만 남을 저 눈부신 꽃구름

어떤 이에게는
달콤한 솜사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어머니
그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1. 접시꽃 당신

키 낮은 당신
담보다 높이 꽃대 키워 올리심은
온 세상에 아름다움 뽐내고픈 허영인가요.
담 넘어 세상 궁금한 갈망인가요.

담 밖의 세상 도대체 어떠했기에
담 밖의 세상에 내민 당신 얼굴 
피보다 진한 분노의 붉은빛이고 
숫처녀사랑의 수줍은 분홍빛이며
해맑은 아이의 순백인가요.

당신의 숨은 뜻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의 고운 얼굴 담 넘어 내미던 날
초여름의 눈부신 햇살은 더욱 밝았고
담 밖의 세상은 탄성으로 화답했습니다.









2. 접시꽃 향연의 길

해마다 오월의 끝, 초여름 시작 즈음
서림초등학교 후문 길 지날 때에
자동차의 속도는 거북이만큼 느려집니다.
접시꽃 향연에 눈길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치마 두른 아줌마엉덩이 만한 땅
은행나무가로수 뿌리내린 자리마다
지극한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듯
어른 키보다 높이 올린 꽃대궁에
주렁주렁 피어낸 접시꽃의 향연

분홍색, 붉은색, 하얀 색깔의
수줍지만 뜨겁고 차가운 아름다움이
눈길을 휘어잡는 성당 가는 이 길은
삶의 속도 늦추는 힐링의 길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너의 녹색 잎 사이로
연두색 꽃대 오르던 날부터
나의 하루는
너를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은
2019년 4월 10일 수요일이었다.

뱃속 아이
초음파사진에 담는 산모의 마음으로
나는 너를 스마트폰으로 찍을 뿐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너를 위한다는 짓들이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하늘의 새를
새장에 가두는 어리석음과 같기 때문이다.

꽃대에 맺힌 녹두알만한 꽃망울
큰 애기 젖꼭지처럼 부풀리는 
산고의 시간 40일 째 되던 날
우윳빛 꽃잎이 수줍은 너
은은한 향내 실안개처럼 스미며
아름다운 자태 신비하게 드러냈다.
이날은
2019년 5월 20 월요일이었다.

우윳빛 꽃잎은 녹슬어가고
은은한 향내마저 희미하게
풍란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피는데 한참이어도,
지는데 금방이더라.-
시인의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이날은
2019년 6월 10일 월요일이었다.

시들지 않는 꽃은
꽃이 아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심우心友의 촌평
심금心琴을 친다. 














터미널
1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려 어딘가로 돌아오는 사람들
타는 사람 배웅하고, 내린 사람 마중 나온 사람들
터미널은 들고나는 사람을 들숨날숨 하는
살아 숨 쉬는 거대한 공룡이다.

2
일상이 따분하여 활력이 필요한 사람
도시를 탈출, 일탈을 꿈꾸는 사람
터미널로 가시라
하얀 파도 넘실대는 갯마을
종점버스에 오르시라


삐비


어렸을 때,

춥고 긴 겨울밤 짧아지고
햇살 따사로운 봄이 찾아오면

아이들은 들로 나가
볼록하게 배동 오른
삐비 뽑아 먹었지.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한
삐비는 주린 배 채우고
껌처럼 씹고 즐기는 
무공해 천연 식품이었지

옛이야기

문맹의 시절. 아이들은
긴 겨울밤 화롯불 앞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옛이야기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꿈을 가꿨다.

디지털 시대,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나 홀로 게임 즐기면서
우주여행을 꿈꾸고, 폭력을 배운다.

나 어릴 적 들었던 옛이야기들
이제는 들어줄 아이가 없으니
내 손주 윤슬이 글을 익힐 때 되면
읽어보길 바라며, 옛이야기 써본다.










행복

1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 56만원이
한 달 수입 전부인
그가 하루아침에
전 국민의 스트레스 풀어주는
스타가 되어 sns를 불태운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내가 미쳤어’의 섹시한 리듬을 타고
무대를 장악하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전국의 시청자를 미치게 만든 날부터다.

그러나 그의 노래와 춤보다
더욱 국민을 행복하게 한 감동은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해탈한 부처의 미소와 편안한 해학의 하회탈
그리고 더더욱 마음이 가난한 그의 삶이다.

그가 바로
칠십육 세의 지병수 할아버지다.

2 칠십 대, 반백의 모 그룹 회장이 있다.
그의 퇴직금은 60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맹수의 왕 호랑이를 닮았다.
그러나 호랑이의 위엄은 없다.
대그룹 총수의 너그러운 인상도 아니다
그의 부인과 두 딸 그리고 아들의 갑질은
국민을 열 받게 한다.

*2019. 4. 8 새벽 이 글을 얼마 후
아침뉴스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사망 속보로 뜬다.

변명

나만 그러는 거 같아
혼자 부끄러워 남몰래 얼굴 화끈거렸는데
잘 나갈 때
그들의 표정에서 내 표정 보여
나만 그러는 것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야
사람을 이해하고
겸손의 미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압화押花예술

지리산 넓은 자락 깊은 품에서
이슬 먹고 피워낸 청초한 너
너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벌써
순결한 아름다움 발하는 꽃이었다.

그 꽃잎 따다가
하나하나 정성들여 꾸민 압화押花그림은
물감으로 그린 여느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구례에 가면
압화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전시된 압화예술품들
그 아름다움의 감동은
삶의 상처 치유해줄 것이다

1. 개망초 전설
 
자식들은 도시로 떠나고
지아비는 저승길로 떠나버린
넓은 집에 홀로 남은 늙으신 어머니
허리 굽도록 집안 구석구석 쓸고, 닦고, 풀 뽑으시니
백년 세월 사 대를 이어온 마당이 넓은 집은
풀포기 하나 없이 정갈했었다.

넓은 마당에 햇살 가득한
어느 봄날의 오후
거동마저 불편한 늙으신 어머니
토방에 홀로 앉아 따순 봄볕 쪼이시며
시집 온 날의 수줍은 추억 그리시다
물보다 정갈한 모습 그대로
지아비 기다리는 저승으로 훨훨 가셨다

이후
휑한 빈집의
마당은 황량했었다.

어느새 풀 우거진 빈집의 넓은 마당에
칠월의 여름햇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
늙으신 어머니의 흰 머릿결 같은 순백의 꽃
눈처럼 하얗게 마당을 뒤덮고 있었다.

2019년 7월 4일 둔주




2. 개망초의 하얀 아우성

이름 앞에 ‘개’만 붙이면
개살구, 개복숭아, 개떡, 개망초......
그들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고 만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만 이름보다 사랑받을 뿐이다.
하긴 못된 벼슬아치를 개나리라 부르기도 했었지.

개  망  초 
나라 망하게 한다는 풀, 망초도 억울한데
이름 앞에 개까지 붙여 개망초라니

구한말 개나리들의 무능과 욕망으로
나라 무너져 내릴 때, 위기를 먼저 안 것은
산하에 뿌리 내린 이름 없는 저 풀꽃이었다.
저들은 조국의 위기 알리려 봉홧불 올리듯
하얀 꽃 피워내 백성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망국의 풀, 개망초라 누명쓰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으면 저리도 끈질기게
백성들의 삶터에 파고 들어 결백의 깃발 흔드는가

칠월의 들판은
하늘의 하얀 별무리 떨어져 내린 듯
개망초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하얗다.





3. 소망초素望草라 부르리라

푸르른 들판 암녹색으로 짙어지는 칠월이면
사람 떠난 빈 들판의 언덕배기와
돌아올 사람 없는 빈집 넓은 터에도
그리고 뿌리 내릴 수 있는 산야 어느 곳이든
하찮은 이름의 개망초 흐드러지게 피워 낸다.

황금보다 노란 꽃술 둘러싼 가녀린 꽃잎들
세상 그 어느 유혹의 물감에도 오염되지 않을
하얀 순결의 색깔로 칠월의 산하를 눈처럼 장식한다.

과연 누가
혁명의 촛불처럼 무리 지어 피어내는 저 꽃을
하찮은 이름 개망초라 이름 불렀는가
과연 누가
돌보는 사람 없어도 곱게 피어낸 저 순백의 꽃을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개망초라 이름 불렀는가.

적폐로 얼룩진 세상, 작은 촛불 모여 바꾸었으나
혁명의 완성 대동 세상은 아직 멀기만 아니
이제는 촛불혁명의 완성을 바라는 마음으로
저 개망초의 이름 바꿔 소망초素望草라 부르리라.

2019년 7월 4일 둔주
 




어느 칠십 노부부의 이야기

남편 “어이, 꿀 어디 있어?”
부인 “거기 밥통 옆에”
남편 “왜 여기다 뒀어?”
부인 “여름이라 밥통 밖에 둬서요.”
남편 “잘 했네.”
남편은 언제나 부인이 한 일
잘했다고 칭찬한다.

“그것도 못하요?”
“그것 쫴끔 하고 벌써 그만 두요?”
“전기세 많이 나옹께 불 잠 끄시오.”
남편을 향한 부인의 바가지다.

부인의 바가지에 이골이 난
남편은 무사태평에 빠지고
남편의 칭찬에 무감각해진  
부인은 고래의 춤을 잃고 말았다.

부인의 무감각 되살리기 위해서
남편은 칭찬을 줄여야 했었다.
남편의 무사태평 고치기 위해서
부인의 바가지 없애야 했었다. 






바다에서 다시 만나다 초등학교 동창회

우리는
1957년 3월, 코흘리개로 만나
1963년 2월, 6년의 추억을
까까머리, 단발머리 모습으로
달랑 한 장의 흑백 사진에 담은 뒤
세상이라는 넓은 싸움터로 내던져졌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로 내던져졌다

2017년 4월 22일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냇물 따라 흘러간 물방울들
강물을 따라 흐르고 흘러
넓은 바다에서 다시 만났다

흑백 사진 속의 앳된 소년 소녀들
백발주름 성성한 은빛노인 되었지만
이날만은 사진 속의 그 시절로 돌아간
까까머리소년, 단발머리소녀였다

 2017년 4월 22일
   둔주 정성기





인생찬가

끝 모른 인생길 달려오다
돌아보니
그 유년의 시절 아득하구나.

투명한 눈동자의 까까머리 소년과
해맑은 꽃송이의 단발머리 소녀는
거칠고 험한 인생길 헤쳐 오면서
파도에 다듬어진 바닷가 몽돌처럼
세상풍파 달관한 은빛노인 되었으니
마침내 이루었구나, 부처의 꿈

서로 다른 삶의 무대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듬어진
초등학교 동창들
졸업사진에 흑백으로 멈춰있는 
추억의 시간 들추어 행복하니

정녕
인생은 아름답구나

2017년 4월 22일
-초등학교 동창회 마치고 둔주 -







마동12회 가을 여행

초동친구들
삶의 짐 잠시 내려놓고
계룡산, 뿌리공원에서
재미있고 의미 깊은 
1박 2일 일탈의 시간 가졌다.

듬성듬성한 머리숱에
잔주름은 더욱 늘고
귀, 눈, 코, 이빨까지
의료기술에 의존하는
늙은 몸으로 만났지만
마음만은 초동친구
개구쟁이 그 시절이었다.

주고받는 말은
도란도란 정겨운 대화보다
맛깔난 욕지거리 감칠 나는
거친 소리 요란했지만
그것은
오십년 묵은 정의 표현이었다.

거짓의 위선은 없고,
감추는 복선도 없었다.
고향의 질척한 정 묻어나는
직설적 표현만 난무했다.

귀가 순해진다는 육십을 지나
마음먹은 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칠십 나이에 들어섰는데도
귀는 순하지 않았고,
언행은 거칠었다.
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공자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도덕의 굴레를 벗고
벌거숭이 초동시절로 돌아간
추억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 자유로운 해방감

계룡산, 뿌리공원에서의 1박 2일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잠시 벗어난
삶의 쉼표, 해방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가정의 가장으로서
일터의 생활인으로서
지역의 어른으로서
때로는 위선으로, 때로는 진심으로
힘들게 살아갈 친구들아
계룡산에서 받은 정기로
힘내시라!
뿌리공원 성씨기념탑의 자긍심으로
당당하시라!

둔주 정성기





슬픈 희극

주현, 창석 코흘리개 초등생일 때
북창정미소 쌀 서리 사건은
우리들의 가난한 시절을 상징하는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계룡 숙소에서
그 날 밤의 쌀 서리를 말하는
주현과 창석은 물론, 친구들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배꼽 쥐고 웃을 뿐이었다.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슬픔도 가난도
세월이 지나 웃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슬픔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대나무 전설은
비장한 슬픔이나
북창정미소 쌀의 전설은
슬픈 희극이었다.






철쭉과 여인

흐드러진 철쭉꽃을 배경으로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 인증 샷 하니
철쭉꽃은 부끄러워 더욱 붉어지네.

그러지 마라
니들이야 해마다 한 철
붉게 불타듯 피고 지지만

여인은
이 아름다움 만드는데
평생 걸렸단다.
그 세월이 칠십 년이란다.


기다림

소년은
재기 발랄했었다.
재기 발랄한 소년의 입담은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
컬러티비 생중계보다 생생했었다.

그 소년이
칠십 넘은 노인 되어
그 때의 초동친구 기다리다
깜빡 잠들었다.

세상풍파 고스란히 맞아온
바우 얼굴로


초등동창들 나들이 사진

1
이런 날
남은 인생에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하니
정말로 의미 깊은 사진이다
참말로 뜻 깊은 모임이다
진짜로 좋은 친구들이다

2
아침에 뜨는 해도 붉지만
저녁에 지는 해도 붉더라
그대들은
서산마루 넘어가는 붉은 해
더 뜨겁게 불태우시게
더욱 붉게 태우시게
하얀 재 될 때까지
죽어서 저 세상 가벼이 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