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생
아버님께서는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 1917년 3월 25일(음력)
해남읍 평동리에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이 땅의 가난과 고난을 온몸으로 견디며 젊음을 가꾸시다
22세 때 박병애 권사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시고
해남군 계곡면 둔주리 한전출장소장으로 부임해 오신 뒤
이곳에 삶의 터를 닦으시며 슬하에 9남매를 두셨으나
그가 뿌리신 인생 씨앗의 열매를 보시지 못하고
그 짐을 어머니에게 맡기신 채
1967년 2월 11일(음력) 밤 10시
풀잎의 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삶을 마치시니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부름으로 햇살 되시고
그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의 따스한 햇살로 인생의 방향을 찾고,
그 흙을 땀 흘려 일구며 아홉 가정으로 번창한 저희 9남매는
아버님의 음덕에 감사하고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30주년은 맞아 이 묘비를 세웁니다.
1997년 4월 5일
1943년?
봄햇살 밝은 날
우리 구남매의 아버님과 어머님
행복을 흑백사진에 담았습니다.
어머니 무릎에 안긴 아이는 큰 누나입니다.
75년?의 세월 흘렀지만,
부모님의 행복했던 시절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멋진 아름다움으로 간직되었군요.
동생 덕님의 집에 모인 형제들
하룻밤 지새며 정 나눔 할 때
큰 누나가 보관 중인 사진을 가져오셨어요.
아버님과 어머님
20대 청춘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자랑스럽게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다섯 째 둔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