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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시대惡童時代

gureum 둔주 2020. 4. 20. 07:00




악동시대惡童時代

 

2. 비오는 날

 

   1962년 소년의 나이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일 때이다. 소년은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백일장대회에 학교를 대표하여 참가한다. 대회 하루 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소년은 선생님을 따라 학교를 나섰다. 교통이 불편해 해남읍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시간에 맞춰 대회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소년은 흙먼지 날리는 자갈길을 지나고 황토고갯길을 넘어 월암고개까지 걸어서 갔다. 소년의 집이 있는 마을에서 월암고개까지는 2km 정도 되지만, 학교에서 월암고개까지는 5km가 넘는 거리이다.

  월암고개는 광주와 해남 방면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는 간이정류소이다. 정류소라야 달랑 오두막 한 채뿐이다.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황토자갈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집이다. 주변은 한낮에도 호젓하다.

   월암고개 정류소에 도착한 소년은 강진으로 출장 다녀오신 아버지를 밤늦게 기다린 기억을 떠올린다. 별빛도 구름에 가려 사위가 깜깜한 밤에 버스의 불빛이 보일 때, 그 빛은 너무 아름다웠다. 직진하는 라이트 빛보다 지붕과 차창 옆에서 반짝이는 붉은 색, 주황색, 초록색 빛은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깜깜한 밤에 버스는 설레는 빛으로 보인다. 빛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버스가 산모롱이로 사라졌다 다시 돌아 나오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산허리 돌고 돌아 버스는 마침내 정류소에 멈춘다. 버스에서 내리신 아버지와 함께 소년은 어두운 산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소년이 기억을 더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울퉁불퉁 자갈길 먼지구름 피우며 버스가 굴러온다. 소년은 선생님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정류소마다 멈추어 손님을 태우고 내렸다.  옥천면소재지를 지나 굽이굽이 우슬재를 털털거리며 넘어 오후 늦게 마침내 해남읍에 도착했다.

 

   다음 날, 백일장대회가 실시되었다. 글감은 ’, ‘선생님’, ‘부모님이다.

소년은 부모님과 선생님을 중심으로 월암고개의 추억과 전날 선생님을 따라 해남읍으로 가는 길 우슬재의 정경을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갔다. 글은 하나의 소재로 자세히 써야 좋은데, 소년의 글은 월암고개, 아버지, 선생님, 우슬재 등 소재는 많고 감동은 없었다. 소년의 글은 산만했다.

 

   오후에 심사결과 발표와 시상이 있었다. 소년은 가슴 조이며 발표에 귀를 세운다. 장려상부터 차례로 발표한다. 소년의 이름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마지막 최우수상 발표만 남았다. 드디어 장학사의 입이 열린다. “최우수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장학사는 잠깐 뜸을 들인 뒤 최우수상은 화산초등학교 이순이! 이순이 학생은 앞으로 나오세요소년은 귀를 의심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학생을 바라본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앞으로 나가는 여자는 꽂감의 딸 그 순이가 분명했다. 단발머리 순이는 예뻤다. 소년은 가슴이 떨렸다.

 

   시상이 끝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순이의 *문화방송 인터뷰가 있었다. 먼저 최우수상을 받은 글의 낭독이 있었다. 순이가 낭독했다.

  -제목은 비오는 날’.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우산을 가져와 집으로 간다. 그러나 순이는 아빠가 없고 엄마는 바쁘기 때문에 오실 수 없다. 순이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우산을 씌워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 순이는 선생님이 아빠처럼 느껴진다. ‘비오는 날의 간단한 줄거리이다.-

  아나운서가 순이의 가정환경을 묻는다.  순이는 엄마랑 단둘이 살며 엄마는 삯바느질을 한다고 대답한다. 소년은 소름이 돋았다.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 하는 순이의 앙큼함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산문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활문이어야 한다. 거짓말을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순이는 거짓글을 썼다. 거짓글에 맞추어 인터뷰를 해야 하니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 교감으로 있는데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고 하는 등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이가 전학 안 갔으면 우리 학교가 1등인데선생님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소년의 발길은 무거웠다.



에필로그

 

  1. 순이는 전학 가기를 싫어했다. 울면서 전학가기 싫다 하니 꽂감과 엄마는 할 수 없이 후임으로 오신 문교감 댁에 순이를 맡기고 화산초등학교로 전근 가셨다. 그러나 얼마 후 순이는 아빠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문교감이 옷장에 둔 돈을 도둑을 맞았고, 순이가 의심을 받게 된 것이 원인이다. 다행히 순이가 떠난 뒤 도둑은 잡혔다. 도둑은 둔주포에 사는 4학년 아이였다. 홀어머니랑 사는 가난한 아이가 돈을 헤프게 쓰고 다녀서 추궁 끝에 자백을 받고 남은 돈을 회수하였다.

   소년이 순이를 본 것은 백일장대회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소년은 늙어 칠십이 넘었다. 그러나 칠십 노인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순이는 아직도 13세의 앙큼한 소녀이다    

  

2. 순이의 글은 다분히 신파적이다. 소년소녀 문학잡지에 보면 비슷한 글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은 순이는 어떤 글이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 심사위원들이 감동할만한 신파적 글을 영리하게 창작한 것이다. 그날 소년은 순이의 글을 거짓글이라고 실망했지만, 돌아보면 순이는 성숙했고 소년은 순진했다. 훗날 소년은 교사가 된다. 그는 글쓰기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을 지도할 때, 먼저 예상되는 글감을 나열한다. 그리고 글감과 어울리는 감동적 경험을 더듬어 기억해내게 한다. 없으면 감동적 사연을 창작하게 한다. 아이들은 매번 상을 받아왔다.


2. 문화방송은 1960년 대 텔레비전은커녕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 집집마다 유선으로 연결된 스피커를 설치하고 라디오뉴스나 음악을 보내는 유선방송이다. 학교에서 각 교실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방송실에서 방송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소년의 고향에도 유선방송이 있었다. 사업자가 소년의 집 사랑채에 방송기기를 설치하고 방송 사업을 했으나 전선의 유실이 잦고 사업이 잘 안 돼 몇 년 하지 못했다. 그 시절 가난한 시골에 문명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문화시설이었지만, 라디오 보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