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른다.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내 가슴에 할아버지란 존재의 의미가 어렴풋이 그려질 때, 이미 그분들은 세상에 안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를 모른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우슬재 쪽에 있다는 말을 큰형님께 들은 기억만 희미하다. 어느 양지바른 산기슭의 풀숲에 자리한 소담한 산소를 머리에 그려볼 뿐이었다.
아버지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가셨을 것이나, 아버지의 할아버지 산소 성묫길, 내 추억에는 없다.
내 나이 20 전후 무렵 일이다. 설날 해남읍 큰댁에 간 적이 있는데, 영성 사촌 형님이 우리 형제들에게 똑같은 할아버지 손자이면서 산소에도 오지 않는다고 힐책했다. 지금 생각하면 형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당시의 내 나이면 물어물어 혼자라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도리를 몰랐고, 무심했었다. 지금은 우슬재의 산기슭에 종합운동장, 학생수련원, 해남광장, 장례식장 등 시설들이 들어서서 할아버지 산소는 흔적도 없을 것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흑백사진첩을 펴시어 색 바랜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시면서 “이 분이 내 오라버니시다. 니 외삼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진 속의 외삼촌은 양복 차림에 안경을 쓰신 멋진 신사였다. 의연한 선비의 용모였다.
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얼굴을 모른다. 뵌 적이 없다. 외가가 어딘지를 모른다. 몇 년 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면서 어머니의 고향은 충청북도 영동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부모님, 외조부모님의 품에 안긴 유년 시절의 포근한 추억이 없는 허전함? 할아버지 산소 한 번도 못 간 부끄러움? 나이 칠십 되었어도 여전하다.
그리고 이제는 후손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조용히 삶을 정리해가는 나이이다.
부모님 산소를 생각한다. 산소 관리 물려줄 후손이 없다. 산소 관리의 짐을 맡길 후손이 없다. 산소 관리의 짐을 후손들에게 지울 수 없다. 부모님 산소 관리 후손들에게 짐이 안 되게 부모님의 자식들 9남매가 살아있을 때…
부모님 산소 관리에 관한 내 생각의 변화가 부끄럽다. 창피하다.
2019년 12월 28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