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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gureum 둔주 2021. 8. 8. 14:10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표지
김민환 님이 서양우 님에게 보내온 책의 속표지

1.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장편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작가 김민환의 고교 동창이신 양우 형에게 소개받아 감명 깊게 읽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좌우통합만이 전쟁을 막고 통일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봉강 정해룡의 꿈이 좌절되면서 그와 그의 친족들이 겪게 되는 엄청난 고초와 집안의 비참한 몰락을 기록한 슬픈 서사이다. 근현대사의 어두운 배경에는 이 땅의 주인인 평범한 사람들의 끈질긴 삶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아픈 역사이다.

 

일림산 기슭의 봉강마을은 압해정씨 집성촌이다. 종갓집 종손인 대지주 정해룡은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어진 선비였다. 일제 치하에서 무상교육기관 양정원을 설립하여 민중을 계몽하고 회천서국민학교 건립에 땅과 돈을 기부한 진보 지식인이었다.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고 해방된 조국을 꿈꾸는 애국자였다. 그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허리 잘린 조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몽양 여운형의 건준에 참여하여 중앙위 재정분과 위원장을 맡는다. 그러나 몽양이 암살되고, 김구마저 암살되고…, 이승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그의 꿈은 멀어진다.

그는 여순 사건으로 혼란한 지역의 애꿎은 살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으며, 6·25로 북한군이 들어오자 독배인 줄 알면서도 지역의 인민위원장 자리를 맡아 민생을 살피고 민심을 안정시켰다. 이는 결국 우익 세력에게 고초를 당하는 빌미가 되고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도 핍박을 받는다. 일부는 일림산으로 피신해 산사람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낮에는 토벌군들이 몰려와 산사람과 내통했다고 겁박하고, 밤에는 굶주린 산사람들 때문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간다. 광주 농업학교 재학 중 학생 운동의 선봉에 서다 옥살이를 한 육촌 형 정해두는 일림산에서 백아산 쪽으로 퇴각하다 토벌군에 의해 사살된다. 삼촌 정종철은 친구의 배신으로 토벌대에게 사살되고, 정종희는 실탄이 눈을 스치는 바람에 두 눈을 잃는다. 당숙 정종관은 국군 장교가 되기 위해 국민방위군에 자원했으나 안타깝게 사망한다.

경성대를 졸업하고 동경 제대 재학 중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동생 정해진은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된다. 이화여전을 졸업한 부인 전예준은 두 아들 국상과 훈상을 보성의 시댁에 맞기고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다 6·25를 맞는다. 감옥에서 나온 해진은 공산군이 점령한 인천과 서울에서 고위 간부로 활동하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후퇴하자 부인과 함께 북으로 올라간다. 두 아들 국상과 훈상은 보성 큰아버지 해룡의 집에 있었다.

 

승만 정권 하에서 봉강 정해룡은 좌우통합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한다. 이승만 정군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혁신 정당으로 국회에 도전했으나 또 실패한다. 5·16 구테타가 터지고, 박정희 군부는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에 회부하여 징역 5년을 선고한다. 좌와 우가 극렬하게 맞붙은 한반도에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봉강 정해룡의 자리는 없었다. 우익진영은 빨갱이라고 핍박하고 좌익은 미온적이라고 비난한다. 봉강 정해룡, 그의 꿈과 그의 몸은 집안의 몰락과 함께 무너져가고 있었다. 1969년 박정희의 삼선개헌이 통과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정해룡은 무거운 비밀이라도 감추려는 듯 혀를 위로 말아감은 채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한다. 그러나 자신만 죽으면 영원히 묻힐 줄 알았던 비밀이 있었으니, 그 비밀은 훗날 집안을 풍비박산 나게 하는 피바람이 된다.

 

정해룡과 해진의 아들들은 궁핍해진 가세로 힘겹게 공부하지만, 연좌의 족쇄 때문에 취업할 수 없다. 해룡의 장남 춘상은 육사에 합격했으나 입학이 취소되고, 해진의 장남 국상은 연좌제의 규제가 느슨한 병원 사무원으로 취직하여 숨은 듯이 살아간다. 동생 훈상은 목포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배를 탈 수가 없다. 훈상은 아버지가 북한의 고위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북으로 들어간다. 해룡의 둘째 아들 건상은 철도 기관사로 죽은 듯이 살아가고, 셋째 길상은 사촌 형 훈상을 따라 목포 해양고등학교를 가지만 광주 교대 교원 양성소를 수료하고 고향의 벽지 학교 교사가 된다.

 

박정희의 유신 정권이 쓰러진다. 전두환이 광주 시민들의 피를 업보로 정권을 잡는다. 전두환 정권은 소위 ‘죽잃난또’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여 정해룡 자식들과 일가를 잡아들인다. 해룡의 장남 춘상은 사형당하고 형제 친척들은 가혹한 옥고를 치른다. 정해룡이 세상을 뜨면서 묻어버린 비밀이 열린 것이다.

 

1965년 비바람 부는 깊은 밤 북한의 정해진이 형 정해룡을 찾아온다. 해진은 형 해룡을 북으로 가자고 종용한다. 형은 동생의 요구를 거절한다. 하지만 임무에 실패하고 돌아갈 동생의 안위가 걱정돼 큰아들 춘상을 딸려 보낸다. 작은아버지를 따라 북으로 간 춘상은 사상교육을 받고 다시 남으로 내려온다. 춘상은 북의 지령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비밀로 묻어버린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의 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정보망에 이 비밀이 포착된 것이다.

 

소설은 봉강 정해룡의 추모비 건립을 끝으로 대단원의 매듭을 맺는다.

1995년 지역의 우익 인사들이 26년간 묻혔던 우국지사 정해룡 선생의 추모비를 일으켜 세웠다. 1969년 정해룡이 갑자기 사망하자 지역의 인사들이 그를 추모하는 추모비를 제작했으나 정권의 탄압으로 세우지 못하고 묻혀버렸던 추모비이다. 추모비 건립을 추진했던 진보 인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후대의 보수 인사들에 의해서 부활한 것이다. 추모비 세우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사는 정해룡의 생존 시 마지막까지 사찰한 형사였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고 하잖은가? 이 어른은 순리를 위한 일이라면 역풍도 뚫고 날아가는, 그런 분이셨어.” 봉강을 사찰했던 형사의 맺음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을 옮긴다.

지수는 혼자서 율포 바닷가로 갔다. 고개를 숙이고 절룩거리며 백사장을 걷다가 지수는 눈을 들었다. 물새 한 마리가 홀로 바람을 거슬러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지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물새가 날아 까마득한 곳에서 하나의 점이 되었다가 끝내는 노을 속에 묻혔다. 이윽고 노을이 바다로 내려앉았다. 득량만 봄 바다에서 붉은 윤슬이 일렁거렸다.

봉강 해룡(왼쪽)과 아우 해진(오른쪽)이 해방 3년 전에 모친(윤초평)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는 봉강의 매제 안용섭 선생으로 전남대 법대 학장을 지냈다. 해진은 동경제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 그 대학 교복을 입고 있다.    

2. 사실과 허구의 차이

 

작가 김민환은 소설 속의 정훈상과 목포 해양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한다. 봉산 서양우 형도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봉산 양우 형도 정훈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을 옮긴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친구가 주소록을 들고 원등마을로 나를 찾아왔다. 대뜸 족보를 보자고 했다. 그가 택호로만 알고 있던 그의 5대 조모 ‘원등 할머니’가 우리 집안에서 출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그를 통해 그의 집안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화려하고도 기구했다. 그의 가족사 한 토막을 소설로 낸다. 정훈상의 사촌 동생이자 소설 주인공의 아들인 정길상 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햇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기억을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 듣고, 자료를 찾아 집안의 내력을 정리해주었다. 집안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효심에 고개를 숙인다.-

월북한 정훈상이 북한 선전 방송에 나와 친구 김민환을 거론하는 바람에 김민환도 신문기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와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거의 같은 소설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은 김범우, 염상진, 염상구, 하대치, 소화, 정하섭, 심재모 등등 딱히 어느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 큰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대하소설이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봉강 정해룡이란 우뚝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인간관계가 얽혀나가는 장편소설이다. '태백산맥'을 굵은 가지 넓게 퍼져나간 당산나무로 비유한다면,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원줄기 곧게 뻗어 올린 금강송에 비유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줄거리는 결국 작가의 창작이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도 실존 인물 누군가를 모델로 했겠지만, 결국 작가의 창작 인물이다. 소년 빨치산 조원제만 진보경제학자 박현채 교수가 실제 모델이라고 작가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봉강 정해룡을 비롯하여 대부분 실존 인물이고 실명이다. 봉강의 마지막 모습을 초상화로 그린 지수와 악질 석철 정도만 작가의 창작 인물이다. 실존 인물을 실명 그대로 한다는 것은 소설 속 인물의 행적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실존 인물이 소설의 주요 인물이 되면, 소설 속 인물은 실존 인물보다 더 훌륭하게 미화되기도 하고 실존 인물보다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유비는 덕망 높은 인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됐지만, 역사 속의 유비는 결코 유능하다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소설 속의 공명은 바람도 불러일으키는 신출귀몰한 인물로 묘사됐지만, 역사 속의 공명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던 인물이다. 소설 속의 조조는 간계에 능하고 차가운 인물로 묘사됐지만, 역사 속의 조조는 치세의 영웅으로 천하 통일의 주역이었던 인물이다.

장편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의 주인공 봉강 정해룡은 훌륭한 인품에 영화배우 뺨칠 정도의 미남으로 묘사되어있다. 실존 인물 정해룡은 과연 어떤 분이었을까? 나는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행히 봉강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 초췌한 모습으로 찍은 흑백 독사진 한 매와 봉강 형제가 어머니랑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봉강은 작가가 묘사한 소설 속의 봉강만큼 미남이었다.

 

소설 속 봉강 정해룡의 고향은 보성군 회천면 압해 정 씨 집성촌인 봉강리다. 중시조 반곡 정경달은 경상도 선산 부사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나라를 구한 충신이다. 봉강은 반곡 정경달의 13대 종손이다. 봉강의 집터는 일림산의 기가 뭉쳐 득량만 바다를 향하는 거북의 형상으로 영구하해(靈龜下海)라 불린다. 집터는 도선국사가 전국의 명당 터를 기록해놓았다고 하는 도선비결에 등장하는 명당자리다. 누대를 이어 온 압해정씨의 종갓집, 봉강 정해룡의 생가를 거북정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작가 박경리의 창작 인물이다. 때문에 소설의 중심 무대 하동군 평사리에 있는 최 참판의 집과 여러 집은 소설 속 집들을 재현해 놓은 것일 뿐, 사람의 숨결이 녹아있는 살림집이 아니다. 태백산맥의 중심인물들도 작가의 창작 인물들이다. 때문에 태백산맥 문학관의 소화집도 소설 속의 소화 집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살림살이의 손때가 묻어있지 않은 집이다. 그러나 김민환의 장편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거의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거북정도 거짓으로 재현할 필요 없이 현실 속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수백 년간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역사가 있는 집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봉강 정해룡의 생가를 답사하려고 한다.

봉강  정해룡 추모비

3. 봉강 정해룡 생가 답사 나들이

 

2021. 8. 4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존경하는 정암 이윤수 선배, 봉산 서양우 형과 함께 음악 감상실에 몸을 싣고 봉강 정해룡 님의 생가를 답사하기 위해 보성으로 향했다. 네비의 안내를 따라 보성군 회천면 봉강마을로 들어서니 마을을 감싸고 있는 일림산의 웅숭깊은 산새가 일행을 압도하는 거 같았다. 마을 앞 수백 년 묵은 팽나무 숲은 마을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비보 숲이다.

 

봉산 형에게 형수님이 핸드폰으로 우리나라 배구가 터키를 3대 2로 이기고 올림픽 4강에 올랐다고 알려왔다. 우리는 환호했다.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봉강 정해룡 님의 생가 거북정은 마을 뒤쪽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곳, 득량만이 바라보이는 마을의 제일 어른 자리이다. 뒤로는 일림산의 울창한 숲이 마을을 감싸안고 있었다. 깨끗이 단장된 광주이씨 효 열녀문 앞에 차를 세웠다. 열녀문 앞의 작은 바위는 하마석이다.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석 앞에 우리는 차를 세우고 내렸다. 봉강의 증조할머니인 광주이씨는 남편이 죽자 거북정 뒤란의 대나무 숲에서 남편을 따라 자진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열녀문을 세운 연유이다. 거북정은 일림산 골짜기의 맑은 물이 흘러들어 우리나라 모형의 연못을 채우고 마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연못은 봉강 선생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한때 백여 명의 식솔들이 밥을 먹어 백구가로 불렸던 거북정, 지금은 후손들 모두 떠나고, 외지인이 살고 있었다. 사람은 갔지만, 역사는 흐르고 흔적은 살아있었다. 봉산 형과 정암 선배는 명당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울 안의 키 큰 배롱나무 한 그루, 담 너머로 하얀 꽃 피워 올렸다. 생전의 봉강 선생은 키가 훤칠했다는데, 하얀 백일홍은 봉강의 영혼인 듯 순결했다.

 

거북정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을의 개울 앞 정자에 할머니들 네 분이 앉아 삶은 감자를 먹고 있었다. ‘봉루정’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다. 일행은 시원한 물도 얻어 마실 겸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네 분 중 두 분은 외지 마을에서 시집와 사시는 분이고 두 분은 압해정씨로 봉강리에서 태어나 봉강리로 시집와 평생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연세는 82세와 81세라고 한다. 와, 봉강리의 살아있는 역사가 앞에 앉아 계신 것이다.

 

“할머니, 양정원이 어디에 있었어요?”

“저기 저 빈 밭 자리요”

할머니가 가리킨 곳은 약 300m 떨어진 빈 밭이었다. 양정원 건물은 사라지고 빈 터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할머니, 정해룡 선생은 잘 생겼어요?”

“그라믄이라우, 키도 크고 훤하게 정말 잘 생겼지라우, 징하게 점잖하고 쫴깐한 아이들한테도 하대를 안하고 꼭 존대말을 썼지라우. 마을 집들은 다 초가집이고, 저 거북정 집 땅을 벌어먹고 살았지라우.”

할머니는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더하면서 봉강 정해룡 님의 훌륭한 인품을 칭송했다. 아,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봉강과 소설 속의 봉강은 외모도 인품도 똑같았다. 지역에 베푼 선덕도 할머니 기억과 소설은 같았다.

나는 정훈상에 관해서 물었다. 할머니는 훈상이 형 국상과 동갑이라면서 훈상은 아버지 따라 북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길상은 초등학교 선생을 했으나 얼마 못하고 감옥으로 잡혀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상이 참 불쌍하게 컸다고 했다. 소설 속 길상은 조현병을 앓은 박 씨 어머니가 길상을 낳고 바로 세상을 떠서 유모 젖을 먹으며 자랐는데, 할머니가 기억하는 길상과 소설 속의 길상은 한 사람이었다. 길상의 어머니 박 씨는 정신병을 앓았다고 했다.

“길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해룡 님은 혼자 살았다요?”

나는 정해룡의 두 번째 부인 최승주가 혹시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으로 물었다.

“아니지라우 두 번째 부인은 평양서 왔다고 합디다. 그래서 평양댁이라고 불렀어라우.”

소설 속 해룡의 두 번째 부인은 평양 갑부의 딸 최승주다. 해진의 부인 전예준의 이화여전 후배이다. 봉강 정해룡의 잘생긴 모습을 보고 흠모하다가 봉강이 부인과 사별하자 전예준의 중매로 결혼한다. 소설은 허구가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최승주는 남매를 낳았고 남편이 투옥되자, 자식에게 좌익의 딱지가 붙지 않게 하려고 서울로 올라가 피아노 강습을 하면서 남매를 기른다. 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연좌제 구속이 없는 외국계 회사에 취직한다.

“할머니, 봉강 선생 추모비는 어디가 있다요?”

“회천서초등학교에 있는디 누가 관리를 안 항게 풀이 무성해라우”

할머니의 말에 속상함이 묻어난다.

할머니는 길 건너의 집을 가리키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있으면 자세히 많이 들려줄 것인데 출타 중이라고 아쉬워하신다. 이끼 무성한 돌담이 아름다운 집은 총에 맞아 실명한 봉강의 삼촌 정종희의 집이다. 

우리는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 덕분에 소설과 역사의 일치 곧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으로 뜻깊은 자리였다.

 

우리는 고맙다 인사하고 일어났다. 점심때가 늦어 추모비 답사는 포기하고 율포로 향했다. 뜨거운 햇살이 작열하는 백사장은 한산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넓은 식당도 우리를 포함 세 자리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전어 회무침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승용차에 올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했다. 그리고 광주로 향했다. 오는 도중 녹차 밭에 들러 정암 선배님이 녹차를 샀다. 정암 선배가 녹차를 사주는 것을 나와 봉산 형은 녹차를 즐기지 않는다고 극구 사양했다.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정암 선배님이 들려주는 교육계 비하인드 스토리가 구수하게 흐르는 음악 감상실은 광주를 향해 달렸다. 오후 5시, 정암 선배님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뜻깊은 하루였다.

 

2021.8. 둔주

봉강 생가 대문 앞에서 찰칵
효열녀문 앞에서
하얀 백일홍 꽃 취한 듯 바라보다
거북정에서 바라보는 전망, 득량만이 가깝다.
소설 속 정훈상과 마루에 앉아있는 봉산 서양우는 목포 해양고등학교 동창이다
봉강의 삼촌 정종희 집 돌담, 정종희는 유탄에 맞아 실명하였다. 고인이 되셨다. 이끼긴 돌의 어울림 돌담이 아름답다.
사람은 갔으나 역사는 흐르고 흔적은 살아있다.

 

둔주 정성기
거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