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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우주

gureum 둔주 2021. 8. 28. 10:50


버섯과 우주

버섯은 균류라는 지하 제국 지배자가 땅 위로 밀어올린 열매다. 버섯은 균류의 유전자를 포자 형태로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균류에는 탄화수소를 탄소와 수소로 분리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탄화수소 결합 형태의 생명체는 모두 균류의 먹잇감이다. 이렇게 균류는 생명이 다한 것을 분해해 다른 것으로 바꾸고 이동시킨다.
균류는 식물들의 메신저이기도 하다. 서로 떨어져 있는 나무들은 땅 밑에서 균류를 매개체 삼아 서로 신호물질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균류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순환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지휘자이자 지배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큰 네트워크의 작은 일부라는 느낌은 죽음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사고를 유기체에서 무기체로 확장시키면 우리는 더욱 큰 네트워크와 직면하게 된다. 바로 우주다.
현재 생명이 확인된 곳은 지구뿐이니 이 우주 전체가 무기물로 이뤄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구는 우주라는 큰 무기물 네트워크의 극히 작은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는 너무나 커서 하나의 별에서 다른 별로 가려면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수백, 수천 년이 걸린다. 그런데 이 별 수천억 개가 은하, 은하 수천억 개가 은하단, 은하단 수천억 개가 초은하단, 초은하단 수천억 개가 모여 이뤄진 것이 바로 우주다.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단적인 방대함이다.
만약 우주 곳곳에 생명체가 있고, 그것이 행성 수십억 개에 이른다고 한들 그 모든 생명체는 무기물에 비하면 극히 미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주에 대한 상상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준다. 생명을 잃고 원자로 돌아가는 게 어쩌면 상실이 아니라 더욱 큰 근원적인 감각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뇌를 비롯한 생명체 네트워크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균류와 같은 거대한 네트워크까지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면 유기물과 무기물이 연동된 새로운 네트워크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도 사라지고, 이 우주 전체는 생명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우주론과 복잡계 과학의 콘텐츠들을 탐사하다가 해보는 상상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님 글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