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한 줄의 이 짧은 기록을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이리 묘사했지요.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군량은 시간과 더불어 말라갔으나,
시간은 성과 사소한 관련도 없는
낯선 과객으로 분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
쌓인 눈이 낮에는 빛을 튕겨 냈고,
밤에는 어둠을 빨아들였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장안의 화제랍니다.
저마다 제 입맛대로 해석한 정치인들의 촌평을 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을 거라는
건방진 상상을 합니다.
소설은 편 가르기 식 감정을 배제합니다.
소설은 굴욕의 역사를 작가 특유의 문장으로
냉정하게 담았습니다.
문장은 간결합니다.
서릿발 같이 차갑고 예리한 칼날 같습니다.
영상으로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입니다.
소설 남한산성을 강추합니다.
이 글은 몇 년 전 영화 남한산성을 개봉할 즈음 정치인들이 한 마디씩 하는 꼴이 보기 싫어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얼마 후 영화를 봤고요. 영화는 예상처럼 소설의 감동을 넘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영상은 무한한 문장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영화를 보기 전 김훈의 소설을 읽어야 했습니다.
요즘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가지고 정치인들 한 마디씩 합니다. 윤서결은 준표에게 우린 깐부라고도 하고요. '오징어 게임'은 8부작으로 바쁜 정치인들이 차분히 감상할 정도로 짧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단언컨대 오징어 게임 다 본 정치인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잔인하고 비정한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세상을 비관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오징어 게임'보다는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로 채워지는 '갯마을 차차차'가 더 감동적이고 재밌습니다. 인생의 가을도 거의 지나고 이제는 인생의 겨울을 맞을 나이인데도 젊은 남녀의 사랑이 영글어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듭니다. '갯마을 차차차'는 총 16부 작으로 오늘 밤 마지막 16회가 방영됩니다. 나는 가을밤을 넷플릭스 드라마에 빠져 지새웁니다.
2021. 10. 17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