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 사진
까까머리 학창 시절
광주에서 내 고향 해남까지 가려면
자갈 깔린 울퉁불퉁 신작로길을
흙먼지 날리며 굴러가는
광주여객 버스나 금성여객 버스를
4시간 이상 타고 있어야 했다
그 시절, 어느 토요일 오후
사람들 북적이는 금성여객 대합실에서
해남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고운 얼굴의 여인이 아이를 업고 있었다
여인은 아이가 칭얼거리고 울자
아이를 품에 안더니, 쭈그려 앉아
블라우스의 앞섶을 열고 젖가슴을 내어
아이의 입에 젖꼭지를 물렸다
아이는 앙증맞은 두 손으로
탱탱한 젖무덤을 움켜쥐고 젖을 빨았다
여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아이를 사랑스럽게 내려보았다
그 아름다운 정경 앞에서, 나는
생뚱맞게, 정말 생뚱맞게도
고향 선배 얼굴이 떠올랐다
교회에서 풍금 반주에 맞춰
팝송 '투영'을 가르쳐준 선배
멀리 고흥으로 시집가면서
해변을 걷는 여인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 액자를 주고 간 선배
그 선배의 고운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2023. 5
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