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자격이 없었다
1. 독립군 토벌이 목적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만주육사에 지원했고,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오욕을 덮고, 이젠 사후 존경까지 받으려는 백선엽장군의 삶과
한평생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치고, 아내는 일제 고문으로 숨지고, 아들은 일본군과 교전하다 전사하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진 홍 장군의 삶 중에서 육사생도는 어떤 삶을 기려야 하는가.
2. 육사는 반공학교가 아니다. ‘주적관’ 운운하지만, 군의 존재 이유는 국민 보호다. 주적을 무찌르는 것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 군은 4·3, 5·16, 12·12, 5·18 등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거나 쿠데타를 일으킨 바 있다. 그때마다 반공을 국민 보호보다 앞자리에 내세웠다. 군의 부끄러운 역사다. 육사의 정체성은 호국간성이다. 반공간성이 아니다. 국군은 북한만 막으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적으로부터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
3. 홍범도 장군의 무장독립투쟁보다 공산당 가입을 들춰대는 한편에서 백선엽은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 장교 이력은 놔두고 한국전쟁에서 북한과 맞서 싸운 경력만 강조된다. 머잖아 홍범도 흉상이 사라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는 백선엽 동상이 자리 잡을 참이다.
4. 간토대학살 이후 일제는 사회 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치안유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데 이용됐다.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조선인을 모조리 잡아 천황제를 흔들고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자들이라 규정해 가두고 고문하고 죽였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 총사령부 명령으로 폐지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한국에서는 여수·순천사건 직후 국가보안법으로 부활한다. 여순사건 때 반공주의 노선을 내세워 철권통치를 강화한 이승만 정부는 정부 비판을 공산주의 세력과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의 행위로 몰아 제압하기 위해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악법을 이용한 것이다.
5. 간토대학살 100년이 되도록, 이토록 참혹한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도 알려하지 않는 가운데, 아직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이 나라에서, 공산당 가입 전력을 들어 홍범도 장군 흉상이 철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자유를 압살 하는 국가보안법조차 폐지하지 못한 나라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를 모셔올 자격은 없었던 것이다. 치안유지법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했듯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이 다시 칼춤을 출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 이 나라에서 아직도 반국가 세력을 운운하는 정치지도자가 100년 전 과거사는 묻어두면서 100년 전 독립운동가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파헤쳐 매도하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6. 핵 오염수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홍범도를 다시 죽이는 저 친일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7. 홍범도 장군 일대기를 그린 소설 〈범도 1·2〉를 펴낸 소설가 방현석 씨가 최근 〈경기신문〉에 글을 보냈다. 그중 한 대목이다. “그의 아내는 일본군의 고문으로 죽었다. 그와 함께 싸웠던 큰아들 양순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했고, 작은아들 용환도 항일전선에서 숨졌다. 재산 한 푼 남기지 않았고, 핏줄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나라는,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치느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이의 흉상마저 치우려 하고 있다.
#장군의 명확한 공적과 애절한 조국 사랑은 이념 논쟁 앞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