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 자유기고가
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했다. 이런 사랑꾼이라니. 지난 7일 전파를 탄 한국방송(KBS)과의 특별 대담에서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나”라며 “아내 입장에선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라고 말했다. 세상에, 아내 처지에서 먼저 생각하는 남편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내는 “정치공작”의 피해자, 흠이 있다면 정이 넘친다는 것뿐.
역시 베테랑 박장범 앵커는 이 멜로드라마에 걸맞게 ‘명품 백’ 대신 “조그만 백, 파우치”라는 올망졸망한 낱말을 택해 핑크빛을 더했다. 다만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은 점은 아쉽다. 대선 전인 2021년 12월 김건희 여사가 허위 이력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했던 때를 기억해보자.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검사라고 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습니다”로 시작한 절절한 연서에 신승훈의 ‘아이 빌리브’를 배경으로 넣은 유튜브 영상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번엔 녹화방송이라 3일이나 편집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이를 따라 하지도 못한 한국방송은 반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겐 충성하지 않”는다지만 아내에게 충성하는 남자다. 우정도 이 사랑 앞에선 부질없다. 절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하고, 김경율 비대위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20년 우정은 겨우 위기를 넘겼다. 대통령의 아내 사랑은 국민 여론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65% 이상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반대했는데도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을 단호히 거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 ‘가족 비리 관련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오명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그 굳건한 사랑이 뭉클하다. 한국은 사랑하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각자도생, 빈익빈 부익부 사회에서 사랑은 언감생심이다. 10년 만에 국회 문턱을 겨우 넘은 ‘노란봉투법’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도루묵이 됐다. 하청 노동자는 실질 사용자와 교섭할 수 없고, 이에 반발하다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사랑이라니. ‘산재공화국’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이제 겨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는데 정부가 나서서 흔든다. 일하러 나갔다 언제 끼이고, 떨어지고, 부딪쳐 죽을지 모르는데 사랑이라니. 그러니, 대통령이라도 사랑하시라. 파이팅!
이 지고지순한 사랑의 적은 김 여사의 사과를 자꾸 요구하는 국민이다. 다행히 충성스러운 호위무사들이 있다. 한덕수 총리는 ‘김건희 특검법’이 정부로 이송된 지 하루 만에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법무부는 “정쟁성 입법”이라며 6쪽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검사를 지휘·감독하는 본분마저도 깜박 잊을 정도로 이 사랑을 지키는 데 진심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착지가 김 여사 일가 땅 근처로 바뀌어 특혜 논란이 불거졌을 때,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우리 김건희 여사를 계속 민주당이 걸고넘어지려고 할 것”이라며 15년 동안 추진해온 1조7천억원대 국책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여당 호위무사들의 충정도 못지않다. 윤상현 의원은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 논란을 일으켰던 김 여사의 동남아 순방 사진을 보고 “역대 영부인 중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김 여사 명품 백 수수 사건과 관련해 친윤계 의원들은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김경율 비대위원에게 “대통령의 배신감”을 운운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삼권분립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세상에 사랑 말고 뭣이 중하겠나.
나는 이참에 ‘국민의힘’이 당명을 ‘사랑의힘’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서민을 위한 정치’ 같은 지키지도 않을 뜬구름 말고, 김건희-윤석열 대통령 부부 금실의 비법 대공개를 공약으로 내건다면 내 소중한 한표를 던질 의사가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 8일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가수 변진섭의 노래 한 구절을 독창하지 않았나. “사랑이 필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