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추자도
참척의 아픔을 아시나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났을 때
느낀다는 고통
조선시대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 마리아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구하려고
조선을 겁박하라는 백서를 보내다
처형된 사학죄인 황사영 알렉시오의 아내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바위에 몰래 내려놓고
제주도 모슬포로 귀양 가는 어미
그날 그녀의 눈에는
참척의 고통으로 피눈물이 흘렀으리
그날의 슬프고 슬픈 추자도
푸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참척의 고통에
파도는 온통 검푸르게 울었으리
이백 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검푸른
추자도 예초리 바닷가의 파도 소리
그 고통의 무게에
나그네의 어깨가 펴지지 않는다.
헌책 예찬
문발리 헌책방 골목에서
켜켜이 손때 묻은 책 몇 권 사서 돌아오는 길
울릉도 오징어 고기잡이 나갔다
만선 만장 치겨들고 오는
내 고향 묵호항 고깃배 선장처럼 득의양양했네
삼국유사 누런 페이지에 각인된
누군가의 깨알 같은 푸른 펜글씨들
그날 새롭게 확장된 인지(認知)에
영역을 표시하듯 단호한 글씨들
노교수의 수업 받으며
공부하던 어떤 청년의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갔네
낡은 삼국유사의 페이지들을
푸른 펜글씨로 섭렵하던 그는
무슨 푸른 꿈을 꾸고 있었을까
헌책은 여전히 늙지 않았다
푸른색 펜글씨 속에 깨알 같은 꿈의 흔적
그는 거기서 여전히 청년이다.
봉원사 연꽃
봉원사 앞마당
가을색 무르익은 연꽃
부처님 경전 소리로
끼니마다 배 채우네
봄에는 환한 연꽃으로
혼탁한 세상 밝히고
가을에는 노랗디노란 연잎에
부처님 지혜 채우고
봉원사 오는 사람마다
부처님 경전 읽어주네
삶이란
꽃피고 지는 일순간의 과정
몸소 보여주며 깨닫게 하는
위대한 자연의 스승
봉원사 연꽃.
김명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