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돌아온 책

gureum 둔주 2020. 7. 5. 08:19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

70년 만에 돌아온 책 -모든 문자와 언어의 공통 본성론-

2020년은 한국전쟁 70주년,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이를 기념하여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 서울대인과 서울대 도서관의 경험’이라는 주제로 6월 8일부터 11월 20일까지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20장의 포스터와 함께 관련된 책과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 고서 한 권의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참혹한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이 한반도 지도 펼쳐놓고 북위 38도선 위에 붉은 줄 그으면서, 한반도는 허리가 잘렸다. 허리 잘린 한반도에서 터진 6·25의 비극적인 전쟁은 유엔군과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상황으로 치달았다. 연합군은 승전의 목전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군은 중공군과 수도 서울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1951년 1월 초 중공군의 공세에 밀린 어느 영국군, 그는 부대원들과 함께 현재의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 도서관에 몸을 숨겼다. 강추위에 몸을 녹일 땔감은 책과 서가밖에 없었다. 마침내 부대가 탈출의 기회를 잡은 순간, 그는 살아남는다면 이 끔찍한 경험을 증언할 물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그는 목숨을 건졌고 책도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4년 후 그는 악몽 같은 기억의 증거를 치워버리려 했다. 1955년 그는 전역을 앞둔 초급장교였던 앨런 가너를 찾아가 그 책을 내밀었다. 가너는 값진 물건 같다며 감정을 권했지만, 병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너는 마지못해 그 책을 받았다.

가너는 전역 후 대학에서 고전어를 공부하며 지도교수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책을 본 지도교수는 제목은 모든 문자와 언어의 공통 본성론으로, 1548년 라틴어로 출간된 아주 귀한 책이라 했다. 저자 테오도르 부흐만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라틴어 번역 편집자라고 알려주었다.

1974년 우연히 재미 한국 학자를 만난 가너는 이 책을 돌려보낼 길을 문의했지만, 한국은 아직 안전하지 않으며 이 고서가 무사히 전쟁을 피했으니 이대로 당신이 간직하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너의 나이 만 85세,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기 전 이 귀중한 책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20년 2월 20일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는 아무 인연이 없는 영국 작가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앨런 가너라는 이름난 청소년 문학 작가가 자신이 서울대 도서관 장서를 한 권 가지고 있으며, 나이가 만 85세여서 시간을 더 끌다가는 반환할 수 없을 것 같아 도움을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주원 교수는 도서관장인 김명환 영문학과 교수에게 가너의 편지를 곧바로 전달했다. 마침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 서울대인과 서울대 도서관의 경험’이라는 특별전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었다.
김명환 교수는 구상 중인 특별전에 그 책의 사연을 넣겠다는 e메일을 그날로 보냈고 불과 몇 시간 만에 답을 받았다. 마침내 2020년 4월 9일 작가와 친분이 있는 고서적상을 통해 잘 포장하여 발송한 책이 도서관에 당도했다. 만 70년에서 9개월이 모자라는 세월이 흐른 후, 코로나 19 대유행의 봉쇄 상황을 뚫고서였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안재원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은 1709년에 두 두엣 박사가 소장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두 듀엣 박사는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개인 도서관까지 보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어떻게 서울대에서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소장처를 표기하는 표지 하단이 잘려 나간 상태를 보면 두 듀엣 박사의 장서를 누군가 훔쳐 다른 곳에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입수되었다가 다시 서울대 도서관 장서가 된 것이다.

70년 만에 서울대로 돌아온 이 책의 기구한 행로는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책은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할 이유를 웅변한다. 우리 민족은 또다시 동족상잔의 길로 끌려 들어갈 수는 없다. 미국을 포함 한반도 주변의 나라 중 남북 평화를 바라는 나라는 없다. 통일을 바라는 나라는 더더욱 없다. 오히려 아주 간교하게 통일을 훼방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되살려한다.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한겨레신문 기사를 재구성함

2020. 7. 5 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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