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모성 1

gureum 둔주 2020. 8. 14. 11:14

모성 1

어느 빈집 처마에 몸을 푼
어미 개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장대 같이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전 국토 물난리로 허우적거릴 때
마른 젖 빨려는 강아지들
다투어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다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고
어미 개는 주린 배 채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강아지들 곤히 잠든 빈집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주린 배 채우지도 못하고
황급히 돌아온 어미는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입으로 건물 잔해를 물어뜯고
앞발로 흙더미 파헤쳐보지만
가망 없는 몸부림만 허망했다

그러나 어미 개는 포기하지 않고
허기진 몸 쥐어짜 울부짖기 시작했다
새끼들이 생명의 끈 놓지 않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울부짖었다

며칠 후 장맛비 뜸할 때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울부짖는 개를 본 사람들이
건물 잔해를 조심조심 걷어내자
흙투성이 강아지들 모습을 드러냈다.

여드레 만에 흙더미 속에서 구출된
강아지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어미의 울부짖음을 자장가 삼아
꼬물꼬물 뭉쳐서 자고 있었다.

에필로그
경기도 이천시 율면 어느 마을
폭우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8일 만에 구조된 강아지 소식이 알려지자
암 투병 중인 현직 경찰이 두 마리를 입양하여
무병장수하라고 ‘무병’과 ‘장수’라 이름 짓고
한 마리는 정년 퇴임한 어느 부부가
어미의 모성애에 감동하여 입양했으며
남은 강아지 한 마리와 어미 개는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 중이라는
mbc 뉴스(2020. 08. 13)가 있었다.

2020. 8. 14 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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